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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웅섭 May 20. 2022

용이 놀던 계곡, 곰이 넘던 고개

속리산 둘레길 5코스 (도원리 - 선유대, 14km)


속리산 둘레길 5코스는 도원리 도원소교 부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4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의 시작점인 이곳에 별다른 쉼터나 주차공간은 없고 그저 찻길 옆에 안내판이 덩그러니 서 있는 정도니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첫 번째 경유지는 대티리이다. 대티리는 크다는 뜻의 대자와 고개라는 뜻의 티가 합쳐진 말이며 같은 뜻의 우리말인 한티 고개로 불리기도 한다.  32번 지방도를 왼쪽으로 벗어나 한티 고개로 접어들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경사가 제법이다. 그런데 정상에서 고개를 넘으니 경사가 더 가팔라진다. 괜히 큰 고개가 아니구나 싶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대티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들에 둥그렇게 둘러싸인 마을이 제법 크고 평화롭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살기 좋은 동네라는 느낌이 든다.  

동네 한가운데 화양원탕이라 쓰인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시골마을에 갑자기 문 닫은 목욕탕이라니, 뭔가 사연이 있을법하여 물어보았다. 오래전에 이곳에 온천수가 나와서 목욕탕이 들어섰더란다. 그러나 나중에는 수량이 적어져서 문을 닫고 지금의 폐허로 남아있게 됐단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온천이 생기면서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갑작스러운 개발 열풍에서 폐허로 남기까지 그 복잡한 과정에서 마음을 상한 이는 없었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만들어주는 멋진 그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길을 재촉한다. 마을 길을 벗어나 다시 강을 만나기 직전, 대후 보건진료소에서 왼쪽 샛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눈앞에 멋진 길이 쫙 펼쳐진다. 낭골절벽길이다. 왼쪽으로 낭골절벽을, 오른쪽으로는 달천강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시멘트 포장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아슬아슬한 절벽에는 마침 등나무 꽃들이 한창이다. 장관이다. 어때, 지금까지 마을길 걷느라고 좀 지루했지? 이제부터 그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줄게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강가에 웬 시멘트 포장길이 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옛날,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을 때 마을 주민들의 통로였단다. 강바닥과 비슷한 높이의 길이니 아마도 일 년에 며칠씩은 물에 잠겼으리라. 그러나 후영교가 건설된 이후로는 도로로서의 기능을 잃고 버려졌다가 최근 속리산 둘레길로 다시 태어났단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세월의 두께, 거기에 사람들의 숨결과 사연까지 더해져서 멋진 둘레길이 된 것이다. 강 건너 평평한 자갈밭에는 차박하는 사람들과 다슬기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햇살은 따사롭고 강바람은 시원하다. 강은 조용히 속삭여주고 등꽃 향기까지 나를 반겨준다. 부러울 게 없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낭골 절벽길 끝부분에 부유물들이 쌓여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몇 년 전, 사유지에 둑을 쌓고 나서부터는  쌓이기 시작했단다. 사실 부유물이야 나뭇가지들이 대부분이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이거니 생각하면 그만이겠으나 문제는 스틸로폼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함께 섞여있다는 거다.


낭골절벽길을 벗어나 민가를 지난다. 경치 좋은 강 언덕에 멋진 집들이 몇 채 보이고 사람들이 오후 햇살을 받으며 고춧대를 세우고 있다. 잠시 인사를 건네고 말문을 트다 보니 둘레길에 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유지인 집터 옆으로 수십 명의 트레커들과 자전거, 때로는 오토바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데 예고 없이 불쑥 들어서는 낯선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단다. 게다가 두릅이나 농작물에 손을 대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오토바이 부대가 차를 긁고 지나간 적도 있단다. 갑자기 내가 지나온 시골마을들이 생각난다.  그동안 나는 당연한 것처럼 낯선 마을을 지나치면서 말을 건네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나 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조용한 산골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불쑥불쑥 들어오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 댄다면, 거기에 간혹 쓰레기라도 버리고 간다면 과연 나는 어떨 것인가?  그동안 대부분의 여행은 관광지, 그러니까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된 장소들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관광지니까 시설도 잘 돼 있기 마련이고 여행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즐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신 여행자는 비용을 지불했고 그 비용은 현지 사람들의 수입이 되었다. 그런데 둘레길은 이와는 다르다. 여행자들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터를 여행지로 이용하고 있다. 이해가 엇갈리고 서로 불편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양보해야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남의 삶터에 찾아온 손님들이 먼저 조심하는 것이 맞을 성싶다. 

  



이제 둘레길은 후영교를 건너 짧은 강변 데크길로 이어지고 곧바로 용세골을 지나 용추폭포로 향하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사실 따가운 한낮의 햇살 아래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길을 걷는 것은 비록 5월이라고는 해도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용세골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시원하고 쾌적한 기운이 피부를 감싼다. 졸졸거리는 계곡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질인다. 아스팔트 길로 한티 고개를 넘자 멋진 낭골절벽길을 만났고 다시 잠시 포장도로를 걷다가 이제는 용세골의 숲 속 길을 걷는다. 그 변화무쌍함이 마치 사우나의 냉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다이내믹하다. 용세골 입구에서 용추폭포까지는 1.3km, 2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용추폭포는 비록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하고 균형 잡힌 모습에 용이 놀았을 법한 멋진 웅덩이를 가지고 있다. 멀지 않은 대야산에도 같은 이름의 용추폭포가 있는데 미적인 면에서는 이곳의 용추폭포가 한 수 위라는 느낌이다.



 잠시 다리도 쉴 겸, 폭포를 바라본다. 물웅덩이로 떨어진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넘친 물은 바위길을 지나 계곡으로 흐른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맑은 것으로 봐서 시퍼렇게 보이는 웅덩이의 깊이가 제법일 듯싶다. 물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언뜻 보기에는 늘 같은 모습의 정적인 폭포 같지만 쏟아지고 굽이쳐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자니 참으로 변화무쌍, 심심할 틈이 없다. 이번에는 눈을 감아본다. 적당한 크기의 물소리가 나를 감싸고 점점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 언뜻 생각하면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 절대 고요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빗소리, 하다못해 군중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소음 속에서 오히려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의 고요를 얻기도 한다. 반복되는 소음, 이른바 백색소음들이다. 마음 수련을 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무시로 일어나는 잡념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바라보고 진언을 반복하고 화두를 잡는 것으로 잡념의 자리를 없애라고 가르치지 않던가. 잠시 폭포 소리 속에서 마음자리를 잡아본다.


 용추폭포를 벗어나자마자 이번에는 연리지가 나타난다. 길가에서 불과 200M, 한달음이면 살펴볼 수 있으니 피곤하더라도 잠시 마음을 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수령 60년, 수고 15M의 그야말로 평범한 육송이 산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명물이 된 이유가 있다. 보통의 연리지와는 다르게 두 개의 나무가 꺾어지면서 하나의 나무로 합해진 모습이 마치 두 다리로 서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두 그루의 나무가 사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해서 산 이름도 기존의 제당산에서 사랑산으로 바꾸게 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단다. 그러나 내 눈에는 두 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아니라 한쪽 다리를 구부린 사람이 서 있는 형태로 보인다.




연리지를 뒤로하고 좁은 아스팔트 농로를 따라 20여분을 걸으면 사기막리에 도착한다. 사기막리는 고려시대에 사기를 굽던 사기막이 있던 동네란다. 뻔한 얘기지만 좋은 흙이 있었다는 얘기다. 마을 입구에는 도예체험장이 들어서 있고 체험을 온듯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계곡 물소리와 잘 어울린다. 마을은 오래된 산촌의 흙집들이 군데군데 남아있고 반듯한 신식 집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워낙에 경치가 좋고 물이 맑은 곳이라서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단다. 많은 농촌마을들이 고령화되고 비어가는데 비해 이곳 사기막리는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돌담에 시를 새겨 넣은 목판들이 눈에 띈다. 처음 보는 시들이지만 투박하고도 정감 어린 언어들이 눈에 쏙 들어온다. 이 고장의 지명이 나오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향토시인들의 시를 걸어놓은 듯하다. 도대체 누가 걸어 놓았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치 아쉬람을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돌집에서 주민 한분이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듯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 마을이 좋아서 자리를 잡았고 시가 좋아서 새겨 넣는단다. 서각을 배운 적도 없고 그저 스스로 깨쳐서 좋아하는 방법으로 만들 뿐이라고 겸손을 보인다. 모든 것이 비교되고 화폐로 환산되는 세상, 아무런 대가도 없이 스스로 좋아서 시를 새긴다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둘레길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구나 싶다. 

마을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이름도 정겨운 곰넘이재다. 사람과 곰이 함께 넘었을까, 곰이 살던 고개를 사람들이 조마조마 넘었을까 상상을 하며 숲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 반듯한 습지들이 계단처럼 이어져있는 걸로 봐서 옛날에 삿갓 논자리였던 모양이다.  사실 이 길은 옛날 49번 지방도가 뚫리기 전에는 마을과 괴산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단다. 주민들은 나무와 잡곡과 사기그릇들을 이고 지고 혹은 우마차에 싣고 곰넘이재를 넘었단다. 높지 않은 고개의 정상에는 그럴듯한 소나무들이 둘러 서 있고 소원을 빌었음 직해 보이는 돌들이 작은 탑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지명이 서낭당 터란다. 실제로 서낭당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형으로 보아 마을과 외부의 경계였을 것이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쉼터였을 것이다.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는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곰넘이재를 넘는다. 

곰넘이재에서 운교리로 내려가는 길 역시 오를 때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숲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관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편안한 숲길을 10여분 내려와서 첫 번째 만나는 동네가 불 지선원이다. 그런데 불 지선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절의 모습과는 건물과 배치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제행무상, 모든 것이 변하는 법이니 절의 형태라고 해서 변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절의 모습 또한 처음 불교가 생긴 시대의 인도 사원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마음을 열고 보니 선원의 모습 또한 멋스럽고 단아하다. 마침 마당에 나온 보살님이 지나는 둘레꾼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가 가슴속에 작은 연등을 밝히는 것 같다. 길 옆으로는 보자기와 민속품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다. 물어보니 가까이에 효재 공방이 있단다. 둘러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달래고 길을 재촉한다.

5코스의 마지막 부분은 어렵지 않은 평범한 숲길을 거쳐 운교리 마을을 지나게 된다. 다만 숲길로 들어서는 부분을 놓치기 쉬우니 안내판과 꼬리표에 신경을 쓰는 편이 좋겠다. 도원소교를 출발한 지 네 시간 반, 드디어 목적지인 선유대 입구, 목교에 도착했다. 등나무 꽃 어우러진 낭골절벽길과 용이 놀던 용추폭포, 그리고 곰이 넘던 곰넘이재를 넘어서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 신선이 놀던 선유대와 괴산댐의 물이 만든 절경이 벌써부터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곳은 6코스의 시작점, 아쉬움과 기대로 조심스럽게 하루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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