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동안 매장에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던 사모가 갑자기 까다로워졌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숨겨둔 뭔가를 찾는 듯 한 행동이 계속 이어졌는데
지광은 괜히 불안했다.
‘ 설마, 현금의 존재를 아는 건 아니겠지?’
지광은 시치미를 뚝 떼고 사모에게 친절을 베풀며 딸랑거리기를 반복했는데 그 행동들은 그동안 했던 것에 비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단지 불안할 뿐.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사모의 패션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좀 과감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날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고급스럽다기 보단 덕지덕지 사치를 부린 과장된 패션으로 점점 바뀌고 있었다.
‘ 상속재산이 많긴 했었나 보다.’
지광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넘겼는데 어느 날 눈동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로 사모가 나타났다.
“ 지광 씨?"
평소 허사장이라고 부르던 말투가 저 한마디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들렸다.
“네 사모님?”
지광은 일단 대답했지만 다음에 나올 말이 너무 궁금했다.
“ 혹시 비밀금고 못 봤어요?”
“네?”
지광은 훅 들어온 사모의 질문에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 아마 현금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예요. 혹시 찾으셨나 해서요.”
지광은 이제야 찾았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아직 모른다고 하기엔 표정관리가 안될 것 같아서 어설프게 고개를 숙이고 뜸 들이고 있었다.
“ 아, 찾으셨구나.”
지광의 자신 없는 태도를 보고 눈치챈 사모가 여우 같은 웃음을 지으며 확신에 찬 말을 이어갔다.
“ 그 돈, 위험한 거예요. 지광 씨 잘 못 건드리면 큰일 나요. 그냥 저한테 넘기세요. 어차피 제 남편이 관리하던 돈이잖아요. 그쵸? ”
“ 어. 사모님. 음.. 그러니까..”
지광은 황당함에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모에게 질문했다.
“ 혹시 다 알고 계신가요?”
“ 네. 김 의원과 여진이 까지 다 알고 있어요! ”
사모는 한쪽 눈과 입을 살짝 기울이며 썩소를 날리듯이 대답했다.
그 대답에 지광은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자신이 사모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특히 여진이 체포되는 순간 그 돈을 건드리면 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으로 말했던 것이 갑자기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 김 의원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지광은 원초적인 궁금증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구속된 김 의원이 사모에게 자신의 감시를 맡긴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 여진이 아시죠?”
“ 네..”
“ 그게 원래 제 자리였어요. 그년이 오기 전까진.. 난 여진이가 등장하고 로비브로커에서 은퇴한 셈이죠. 근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다시 저한테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더라구요. 호호호”
사모는 뭔가 복수를 해서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 그럼 제게 김사장님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것 같다고 조사를 부탁한 건 왜 그러셨어요?”
지광은 그동안 사모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김 사장이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의 행동도 그렇고 자신에게 매장의 운영을 맡길 때 무심하게 바라보던 그 행동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복수를 하고 싶었어요. 나를 이렇게 뒷방으로 내 몰았던 김 의원과 여진이에게.. 근데 도무지 상황파악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지광 씨를 좀 이용했어요. 너무 배신감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호호호 ”
사모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지 말을 하면서 통쾌한 웃음소리를 계속 섞어가며 얘기했다.
“ 매장은 처음에 어찌할지 도무지 판단이 안되더라구요. 김 의원에게 팽 당한 후 그동안 먹여 살려 준 김사장이 갑자기 죽어버려서.. 그래서 일단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지광 씨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길래 그냥 다 받아줬어요.”
사모의 말이 이어질수록 지광은 그동안 자신의 행동이 하나 둘 떠올랐고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 그럼 현금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나요?”
지광은 자신의 치부를 다 들켜버린 것 같아 이제 대 놓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 아니요. 얼마 전 누군가를 통해 김 의원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매장을 통제하라고. 그 안에 현금이 있다구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죠.”
사모의 얼굴이 또 한 번 삐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지광은 몇 번 보지 못했지만 평소 사모의 미모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상한 듯 보이는 사모의 얼굴을 보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인물값을 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예쁜 얼굴에는 이유가 있다.
“ 자, 이제 안내해 주세요. 그 돈은 지광 씨가 건드릴 돈이 아니에요. 어찌 보면 제가 지광 씨 목숨 건져준 것 일수도 있어요. ”
사모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해대며 지광을 재촉했는데 그럼에도 지광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돌아서서 청음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차마 따라 들어오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 휴.. 이제 내가 모르는 것들이 더 이상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