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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X 명당을 찾아서...

눈치없는 불청객

화장실 줄이 워낙에 길어서 내가 설거지를 끝낼 때쯤 여자친구가 볼일을 마치고 나왔고 난 이유 없는 환한 웃음으로 그녀를 반겼다.

다시 개운해진 몸과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갈 때 계곡을 건너는 다리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감상했다. 아마도 그때서야 좀 여유가 생겼나 보다.


“ 와 진짜 맑다 ” 흔하디흔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우린 계곡을 한동안 지켜봤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보며 행복에 젖어 있을 때는 오늘 밤 나에게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다.


 


과식을 한 것인지 밤이 되자 배가 스르르 아파져 왔다. 아직 여자친구 앞에서는 방귀도 뀌지 못하는 사이다보니,  뱃속의 가스까지 참느라 더욱 긴급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난 방귀 같은 말만 계속 떠들어 댔을 뿐 정작 방귀는 뀌지 못하고 있었다.


 


배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고 아픈 것인지, 꽉 차서 그런 것인지 이유는 몰라도 결론은 확실했던 그때쯤. 난 급히 삽을 찾아 나섰다.


여자친구는 허둥대는 날 보고 무슨 일인지 당황하며 물었지만, 난 차마 눈도 맞추지 못하고 내 행동에만 집중했다. 아까 태무심하게 던져둔 삽이 어딨는지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급해져 갔다. 한참을 텐트 주변을 뒤진 끝에 어둠 속에 숨어있던 검은 봉지를 발견했고 난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난 머릿속으로 노란 손잡이를 그리며 찾고 있었는데 사실 손 삽은 검은 봉지에 쌓여 있었고 계곡의 어둠은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 더는 참을 수 없어 ’


겨우겨우 막아두고 있던 녀석들이 쏟아져 나올 기세였다.


“ 으…. 휴지 ”


난 여자친구에게 짧은 단어만 겨우 말할 수 있었는데 그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그녀는 특전사와 같은 몸놀림으로 텐트 안에 있던 휴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난 급한 와중에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최대한 어두우며 눈에 띄지 않을 곳을 찾아 나섰다. 이윽고 찾아낸 그것을 위한 명당!!


난 주저 없이 바지를 내린 후 쪼그려 자세를 취했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거기에 쏟아 버렸다.


‘ 휴…. 정말 죽을뻔했네 ’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스스로를 칭찬하듯 혼잣말이 나왔다.


급한 녀석들은 해결이 되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쯤 문제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나는 계속 쪼그리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그의 모습이 더 선명해졌고 그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자신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음악을 느끼는 척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명당을 찾은 적 있던 내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 그는 분명 명당을 찾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 명당은 내 눈에도 띄었던 바로 이곳이 될 터였다.


그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목적일 테니….


 


나는 어둠 속에 쪼그리고 앉아있고, 그는 여유로운 척 시선을 여기저기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기에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내 더 이상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내 행동이 시작되었다. 한 손으로는 바지를 움켜잡고 다른 한 손은 번쩍 들어 파닥거리며 여기에 이미 사용자가 있음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야!! 오지마! 여긴 이미 임자가 있어~'


아마 표정으로는 욕도 한 것 같다. 엉덩이를 까고 파닥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너무 민망했지만, 그가 더는 내 곁으로 다가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몇 걸음 더 다가온 그는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듯하더니 급하게 고개를 돌려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속삭였다.


‘ 드럽게 눈치 없네 ’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하고 나니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와 여자친구에게 무용담처럼 그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 꺄아~ ” 그녀는 질겁을 했지만, 난 우리 여행의 또 다른 농담거리가 생겨서 즐거웠다.


 


그날 밤은 갑작스런 비가 내려 유독 추웠다. 만약 시장에서 이불을 사 오지 않았더라면 우린 차에서 히터를 틀고 자야 했을 것이다.


두툼한 이불의 도움으로 우린 이불속에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좀 전에 겪었던 나의 즐거운 무용담은 끊어지지 않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키득거림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처럼 소리를 내다가 따뜻한 이불의 마법에 취해 스르륵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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