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남책 Jul 05. 2024

현대문명과 노상방뇨

삽의 용도

다시 돌아온 우리 텐트 앞 계곡은 넓게 펼쳐진 수영장 같은 모습에 수심도 딱 허리까지 높이라서 안정감은 최고였다.

‘ 그래, 멋진 모습도 좋지만 안전하게 놀자 ’


난 생각을 바꾸고 다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수영은 여자친구와 함께 놀 수 없으니 여기가 함께 놀기엔 더 제격이었다.


 


이제 노지의 캠핑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쯤 또 문제가 생겼다. 하나뿐인 매점 화장실이 막혀서 고장 난 것이다.


‘아니 좌변기도 아닌 그 화장실이 어떻게 고장이 날 수가 있지?’ 난 궁금증이 생겼지만 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의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만 했다.


“ 우리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식당이 한 군데 있지 않았어? 우리 거기에 가서 밥 먹자. 그리고 화장실을 쓰면 되지 않을까? ”


우린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그 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의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화장실이 중요할 뿐.


난 여자친구에게 화장실부터 가라고 얘기한 뒤 메뉴를 꼼꼼히 살폈다. ‘ 아, 이런…. 백숙이라니….’ 전날 찜닭을 푸짐하게 먹었던 터라 도저히 백숙이 당기진 않지만 이미 화장실에 가 있는 그녀를 다시 나오라고 할 순 없었다.


“ 혹시, 다른 메뉴는 없나요? ” 나는 물었고, 사장님은 친절하게 파전 같은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난 세상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파전과 막걸리를 주문했고 잠시 후 편안한 얼굴로 나온 여자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여기 샤워기도 있어 ”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친구가 원시림에서 살다가 도시에 처음 나온 사람처럼 샤워기에 깜짝 놀라며 나에게 말했다.


“ 아 그래? 대박!! ”


사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샤워기라니…. 노지에서 캠핑하는 고작 이틀 사이에 우린 원시인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 사장님께 말해서 우리 내일 여기서 밥을 한 번 더 먹고 샤워하고 갈까? 서울까지 이 모습으로 갈 순 없잖아 ”


여자친구는 자신의 좋은 아이디어인 양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곧바로 동의했다.


“ 그럼, 밥을 먹고 샤워비를 따로 드린다고 하자. 근데 여기 백숙인데 괜찮겠어? ”


우린 그렇게 샤워랑 백숙을 맞바꿨다.


 


식당에서 나오기 전 다시 한번 화장실을 들리고 문명을 누렸다. 화장실에 비치된 샤워기랑 샴푸 등을 확인하며 깨끗해질 내일의 내 모습을 상상했더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


 


여느 날과 같이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고 물놀이하기를 반복하며 바쁘게 계곡을 오고 갔더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계속 그 식당을 갈 수도 없고 여자친구의 볼일을 어찌 해결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 눈 딱 감고 나랑 저 산 위에 한번 올라가 볼래? 삽 들고….”


난 고민 끝에 결국 방귀 같은 말을 꺼냈지만 의외로 그녀는 동의했다. 스스로도 뭔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우린 노란 손잡이가 달린 삽 두 개를 들고 산책하듯이 산길을 올라갔다. 어젯밤 비가 와서인지 생각보다 좋은 공기 냄새와 숲이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우리는 산길을 오르며 슬쩍슬쩍 눈에 띄던 하얀 물체의 정체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처음에는 산에 있는 버섯이라고 생각했는데 군데군데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사람들이 배변을 해결한 흔적들이었고 어젯밤 내린 비로 인해 휴지가 녹아내려 땅과 일체가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경악했다. 산길 바로 아래 명당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텐트는 어젯밤 비로 똥물에 범벅이 됐으리라….


‘망했다’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지만, 여자친구를 설득해서 오늘 밤을 잘 버틸 수 있는 경험을 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 다른 사람들도 다 여기서 하나 봐. 내가 망볼 테니까 자기도 저기 가서 해 ”


여자친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는지 고개를 떨구고 하기 싫은 동의를 했다. 그래도 그녀는 남은 이성의 끈을 붙잡은 채 남들이 주로 이용한 위치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갔고 난 묵묵히 따라갔다.


“ 근데…. 나 사실…. 지금 큰 거야 ”


그녀는 아기 같은 목소리로 이제껏 참고 있던 말을 부끄러워하며 말했고 난 “ 아, 그래? 그럼 내가 땅을 먼저 팔게 ” 하고 개의치 않는 듯 후다닥 삽을 손에 쥐었다.


땅을 파면서


‘ 이 정도면 되려나? 혹시 넘치면 민망할 수 있으니 좀 더 파자.’ 라는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며 땅을 파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정도면 됐어. 이제 저기에 가서 망이나 잘 봐줘 ”


난 웃으면서 5걸음 정도 자리를 옮겼고 뒤에서는 주섬주섬 옷을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아마 고민이었을 거다. 내가 너무 멀리 가면 무섭고, 내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민망했을 테니. 그래서 난 몇 걸음을 더 옮긴 후에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오늘 난 이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텐트에 돌아오니 샛노란 색의 텐트가 유독 똥색처럼 보였다. 실제로 빗물에 흘러내린 흙이 묻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위치가 너무 정확하게 물길이다. ‘ 휴….’


 


난 텐트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 우리 오늘은 과식하지 말자. 그리고 맥주도 조금만 먹자 ”


내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녀는 웃으며 동의했다.


너무 힘든 첫 캠핑이었지만 우린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내일 그 현대식 건물의 식당에서 깨끗하게 샤워할 것을 상상하며 우린 그렇게 캠핑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전 08화 위험한 물놀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