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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똥묻은 텐트

비오는 날 철수

마지막 날 

우린 눈 뜨자마자 산속을 한 번 다녀오고 우리와 같은 짓을 한 사람들을 괜히 욕했다. 욕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텐트 안의 짐은 생각보단 간단했다. 먹을거리를 싹 다 먹어 치웠고, 캠핑 초보답게 부수적인 장비들은 전혀 가져온 게 없어서 정리를 위해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뭐가 묻어 있을지 모를 텐트를 접는 게 문제였고 말리는 것 또한 문제였다. 하필 그때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와아, 또 비가 오네? 일단 작은 짐부터 차로 옮기고 텐트를 제일 마지막에 접자 ”


당연한 말이었지만 나는 뭔가 자신 있는 모습으로 리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오는 말을 그냥 내뱉었다.


모든 짐에는 흙과 빗물이 묻어 있었고 우린 그것들을 깨끗하게 정돈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냥 박스에 담는 것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장비들마다 본래의 박스 채로 보관해오던 삼촌의 스타일을 지켜주다 보니 일일이 박스를 찾아 넣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 흔한 캠핑용 수레하나 없이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계곡을 반복해서 오고 갔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얼굴을 계속 흘러내렸지만, 차라리 내가 좀 더 힘든 게 마음이 편했다.


 


대부분의 짐을 차에 실어두고 이제 텐트를 접기 시작했다. 구세주 아저씨가 텐트를 펼칠 때 유심히 봐 두었던 우산 접이 같은 곳을 접었더니 텐트는 금방 푹 주저앉았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어찌 접어서 넣을지가 막막했다.


‘ 그냥 이불처럼 접으면 되나? ’


난 주저앉은 텐트의 가장자리를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보려 애썼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 우리 텐트는 몸부림이 심한 사람이 방금 자고 일어난 듯한 이불의 모양이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여자친구의 표정이 슬슬 신경이 쓰일 때쯤 난 결정을 내렸다.


“ 그냥 박스에 밀어 넣자. ”


텐트 박스를 옆에 두고 대충 접은 텐트를 욱여넣은 뒤 튀어나온 천들을 계속 밀어 넣었다.


“ 앗, 망했다 ”


비에 젖은 박스가 결국 찢어져 버린 것이다.


“ 괜찮아 ”


망했다는 말 바로 뒤에 괜찮다고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난 애써 위로했다. 아무래도 삼촌한테 한 소리 들을 것만 같다. 지금 이 상황에 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음부터는 캠핑 장비를 빌리기 힘들 수 있으니 이제는 텐트를 사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만큼 그때의 텐트는 엉망이었다.


물에 젖어 찢어진 박스들과 흙인지 뭔지, 정체 모를 이물질이 묻어 있는 각종 장비들을 바라보며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었다.


 


엄청난 고생을 하고 차에 타기 전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 우리 그 아저씨께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


여자친구는 동의했고 우린 다시 계곡으로 들어갔다. ‘아저씨가 없으면 어떡하지?’라고 잠시 생각했던 것은 기우였다. 구세주 아저씨는 우리가 비운 자리에 금세 물통과 각종 장비들을 갖다 놓으며 다시 자리 맡아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난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우리의 첫 캠핑에 큰 도움을 준 분이기에 큰 소리로 인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모든 짐을 정리하고 차에 타니 우리는 다시 웃음을 찾았다.


“ 자, 이제 식당으로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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