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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12. 2024

20장. 허지광 vs 세무사

사건의 진실.

20장. 허지광 vs 세무사.        


  

지광은 장부를 품에 숨기고 누가 봐도 어색한 모습으로 세무사를 찾아갔는데 어정쩡한 자세로 옷 속에 장부를 숨기고 주위를 살피면서 걸어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뭔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저기 세무사님, 바쁘신데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뭔가 하고 있던 작업을 멈추며 세무사는 간단한 목례와 함께 상담 테이블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급한 일인지 물어보는 세무사에게 지광은 품속에서 장부를 꺼내어 보여주었고 한 장씩 펼치며 말을 시작했다.


“ 제가 김 사장님 매장을 정리하다가 이런 장부를 발견했는데요. 아무래도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


벽장에 현금이 엄청나게 많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세무사는 펼쳐놓은 장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어떤 자료를 확인하더니 이내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뭔가를 검토하는 느낌이었는데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그친 뒤에도 한참을 생각한 뒤 마침내 세무사가 입을 열었다.


“ 흠…. 제가 보기에 장부에 있는 금액들은 아무래도 리베이트와 관련된 금액인 것 같구요. 혹시나 해서 총액을 비교해 봤더니 허 사장님께서 김 사장님에게 발행한 가공계산서 금액과 거의 일치합니다. 즉 김 사장님은 리베이트를 위해 법인의 자금을 인출해야 했을 텐데 그 자금들이 가지급금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허 사장님에게 가공계산서를 수취하면서 세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계산서를 받기 위해 허 사장님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는 어차피 매입세액으로 공제되고 또 법인세 신고 시 비용으로 처리되는 금액이기 때문에 거의 상쇄되거든요.


” 세무사의 설명을 들은 지광은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왜냐하면, 분명히 우리말로 뭔가를 얘기했는데 제대로 알아들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 저기…. 세무사님?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지광은 평소 같으면 눈치껏 알아들은 척했겠지만, 지금은 워낙 중요한 상황이라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 스읍.”

세무사는 이걸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잘 전달이 될지 잠시 고민하면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한 가지 거래를 예로 들면, 김 사장님은 A 회사로부터 2억짜리 주문을 받고 거래대금으로 부가세 포함 2억 2천만 원을 받은 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줍니다. 그리고 김 사장님은 A 회사가 지정하는 B라는 사람에게 물건을 배송하게 되고 정상적인 설치까지 마무리해 줍니다. 여기까지는 되셨나요? ”

 세무사가 일부러 단계별로 끊어주니 좀 더 이해하기 편했다.


“ 네.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 그런 다음 물건을 설치했던 곳에 다시 찾아가 당초 2억이었던 물건을 B로부터 중고가 1억 5천에 재매입하는 것이죠. 이때 2억 중 리베이트는 1억 5천이 되고 나머지 차액인 5천은 김 사장의 돈세탁 수수료가 되는 셈입니다. 여기까지도 이해되셨나요? ”


지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는 괜찮다는 어필을 했다.


“ 여기까지 거래를 한 후 김 사장은 허 사장님께 1억 5천의 가공계산서를 요청했을 겁니다. 법인에서 지출된 돈을 맞춰놔야만 하니까요. ”


지광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 죄송한데 법인의 돈을 맞춰놓는다는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부분을 좀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

 

지광의 말에 세무사는 당연히 모를 수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 법인은 사업을 위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물론 자연인인 사람이 주주가 되고 대표가 되어 법인의 활동을 대신하지만, 엄연히 모든 재산의 주인은 법인인 것이죠. 즉 주주일지라도 법인에게 배당을 통해 금전을 이전받고, 대표이사라도 법인에게 급여로 금전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법인의 돈을 뺏어가면 안 되는 것이죠. 이 논리로 이어나가면 김 사장은 리베이트를 위해 법인의 돈 1억 5천을 증빙 없이 무단으로 지출하게 된 것인데 이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횡령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세법에서는 이를 ‘가지급금’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금액이 문제없도록 장부를 맞춰 두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짜세금계산서가 필요했던 것이구요. ”


지광은 세무사의 설명을 듣고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야 김 사장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 인간이 겉으론 멋진 척하며 뒤로는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지광은 지금까지 이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현재 자기 일을 맡아서 처리해 주는 이 세무사가 더욱 고맙게 느껴지고 신뢰가 갔다.




“ 그렇다면 저한테 주는 수수료도 상쇄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너무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자꾸 죄송해요.”


지광은 점점 더 예의를 차리면서 말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 그건 간단한 얘기입니다. 애초에 김 사장은 가지급금을 제거하기 위해 가짜의 세금계산서를 수취한 것인데요. 그 세금계산서가 매입원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용으로 인식될 테고 동 금액이 결산 과정에서 세금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1억 5천에 20%의 세율을 곱하면 3천만 원이 되는데 이 금액이 산술적으로 김 사장의 추가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허 사장님에게 지급한 수수료 2천만 원은 부가세 신고 시 매입세액으로 공제받기 때문에 그 돈은 자연스레 상쇄되고 3천만 원은 추가로 누리는 이익인 것이죠. 따라서 김 사장은 2억짜리 음향기기를 리베이트 해주는 대가로 5천만 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되는데 총 5천만 원의 이익 중 1천만 원의 세금을 납부하고 최종 이익은 4천만 원이 되겠네요. 이해되시나요? 그 외에도 재무상태표상 가지급금으로 처리되지 않음에 따라 ‘인정이자 손금불산입’과 ‘대표자 상여 처분’이 안 되는 효과도 있지만, 그 부분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지광은 마지막 부분에서 좀 이해가 안 됐지만, 드디어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나니 너무 기가 막혔다.


단순하게 세금이 많이 나오니 가짜계산서를 끊어달라고 요청한 줄 알았었는데 그 이면에 이런 복잡한 스토리가 숨어있는지는 예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리베이트 후 최종적으로 천만 원의 이익을 가져가야 할 김 사장이 자기 덕분에 4천만 원의 이익을 남기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지광이 김 사장과 이런 거래를 한 것은 수십 건이 넘기 때문이었다.


‘ 이 인간이 이렇게 머리가 좋았었나?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을 슈킹 하면서 나한테 뽀찌 한 번 제대로 준 적도 없다니.’     


“세무사님, 혹시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이 모두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나요? ”

지광은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 일단 가공계산서라는 것이 밝혀지면 파생조사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요. 수취인에게도 소명 요청이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답을 들은 지광은 푸우…. 하고 입술을 부딪치며 한숨을 쉬었다.


“ 저, 파생조사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요 그게 말 그대로 파생된다는 의미로 알아들으면 될까요? ”

지광은 대략적인 의미는 파악했지만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번 더 질문을 했다.


“ 네, 맞습니다. 당초 세무조사의 대상이 되는 사업자를 조사하던 중 그와 관계된 불법을 함께 저지른 사업자가 확인되면 그 부분까지도 추가로 조사하는 것을 파생조사라고 합니다. ”


그 말은 들은 지광은 근심이 가득해졌다. 조금 전 장부에 적힌 이름은 누가 봐도 유명인들이었고 파생조사를 통해 이 일이 세상에 드러나는 경우 꽤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 내가 받고 있는 세무조사 한 건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


지광은 자신의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자신을 이런 곤경에 빠트린 김 사장에게 화가 나고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지광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세무사에게 질문해서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났다는 생각에 지광은 수차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세무사실을 나왔는데 깜빡 잊었던 것이 생각나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앗 저기, 세무사님. 혹시 제가 진행 중이던 세무조사는 잘 되고 있나요? ”


요즘 김 사장의 일로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자신의 세무조사 경과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던 지광이었다.

 

“ 네, 세무공무원과 면담하고 지금 해당 자료를 제출하면서 잘 대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예측했던 금액보다는 결과가 더 좋을 것으로 예상되네요.”


세무사가 대답과 함께 옅은 미소를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본 지광은 다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인사를 건넸다.


“ 감사합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세무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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