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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13. 2024

21장. 허지광 vs 세 남자

납치.

21장. 허지광 vs 세 남자.         



 

세무사실을 나온 지광은 터덜터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땅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나는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싶은데 도무지 정리가 안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발길은 자신의 매장이 아닌 김 사장의 매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매장 앞에 도착할 때쯤 지광은 이상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지광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넓은 어깨에 몸에 딱 붙는 정장 차림의 건장한 남자 세 명이 김 사장의 매장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들은 딱 봐도 조직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 듯했는데 그중 한 손을 주머니 속에 깊게 찌르고 있는 한 사람의 시선이 점차 지광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지광은 자신과 눈이 마주칠까 걱정하면서 뭔가 꺼림칙함을 느끼며 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고

마치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처럼 슬쩍 눈길만 준 뒤 빠르게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 깡패들 같은데…. 김 사장의 채권자들인가? ’


지광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기분에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 때문인지 어느새 심장이 한 박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 남자들을 모른 채 지나쳐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발걸음이 잠깐 멈칫하긴 했었지만 바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발을 옮겼다.


'나를 의식하진 못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지광은 남자들의 눈초리가 자신의 뒤로 매섭게 따라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듯, 한 걸음 한 걸음이 사뭇 길게 느껴졌다.      


겨우 그들을 지나쳤지만, 지광은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그들이 뒤따라온다면?’


그래서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3층의 복도 끝까지 걸어가 원래 왔던 길과 완전 다른 방향의 계단 비상문을 열었다. 걸음을 서두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비상구 문을 열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차가운 계단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는데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발걸음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당장이라도 그들이 뒤에서 따라올 것만 같은 느낌에 목 뒤가 얼얼해졌다.


계단을 한 층, 한 층 내려갈 때마다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고 1층 비상구 문이 보일 때쯤에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기에 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슬쩍 뒤를 살폈다.

누가 따라오는지 보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길 건너에 있는 자신의 매장을 바라봤다.


‘보행신호가 이렇게 길었던가?’

지광은 바뀌지 않는 신호등을 보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휴. 겨우 돌아왔다.’


뭔가 큰일에 휘말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벗어나자 지광은 온몸에 힘이 빠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 1층에 있는 CCTV 같은 인간들이 어색하게 계단으로 내려온 자신을 기억하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일단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당분간 김 사장의 매장에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휴…. 하고 한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삐그덕’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내며 매장의 고장 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광은 그 소리와 함께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개를 천천히 든 순간, 그곳엔 아까 김 사장의 매장에서 보았던 남자 셋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남자가 문을 밀어젖히고, 뒤따라 나머지 둘이 어둠 속의 그림자처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남자들의 발소리가 딱딱하게 바닥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유독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들렸는데 지광은 마치 슬로 모션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은 건조했다. 매장 안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리기라도 할 듯한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첫 번째 남자의 손이 문에서 떠나는 순간, 다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매장 안을 울렸다. 이번엔 더 길게 늘어지는  소리였다. 마치 지광을 조여 오는 것처럼.   

   

세 남자의 시선은 레이저포인트처럼 지광에게 정확히 맞춰졌다. 그 순간, 지광은 시간이 멈춘 듯했는데 잠시동안 숨이 가슴에 걸려 쉬어지지 않았다.

밖으로 도망칠 수도, 몸을 숨길 수도 없었고 지광은 그들의 무거운 시선 속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고요한 매장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것은 지광의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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