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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면 Mar 31. 2024

삶은 낙지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부서진 껍데기 사이를 잇던

보이지 않는 끈을 본 것 같기도 했지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를

토막토막 뭉텅뭉텅 썰어내며

여전히 꿈틀대는 다리를 

기름장에 절이며


소주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엉엉 우는

가시투성이 성게처럼

네가 물었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비애도 열애도 없는 이 삶을

끝까지 잇게 만드는 끈은 어디 있느냐고


기름 속에서 꾸물거리는 낙지의 수족을

나는 열렬히 내려보고


삶은 계란과

삶은 낙지로 차린 술상


말뚝에 매인 건강한 수소는 낙지를 먹으며

수십 마리의 암소와 교미를 하고

그들이 낳은 소는 젖을 짜이고

거세된 수소는 육우가 되,


수소가 뭐야. 숫소겠지

가장 단순한 원소처럼 너는 웃


기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낙지가 죽은 입으로 말했지

삶은 계란

껍데기를 깨부수고

그 하얀 단백질을 내게도 들이밀어 주오


단백질로 이루어진 질긴 끈이

네 벌어진 이 사이에 끼여서

여간해선 빠지질 않고


네가 찾던 을 보려면

거울을 오래 응시하라고 했지

수소처럼 웃으면 보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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