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힘을 아직 믿나요?
한 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글을 읽고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상상된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이어 붙여 하나의 덩어리로 종합한다. 그 덩어리를 머릿속에 넣어놓고, 천천히 소화시킨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토대로 나만의 상상의 가지를 뻗어 나간다. 소설책의 경우 그 주인공의 삶을 한 번 살아 보는 것이고. 정보 위주의 도서인 경우,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해 나간다.
책을 읽을 때의 나는 오롯이 혼자이지만. 책의 내용을 인식하는 나는 세계와 연결된다. 이 아름다운 모순을 깊이 흠모하고 있다.
오늘 나를 외롭게 격리시키며, 세계와 소통하게 만든 책은 조동일 선생님의 <한국문학통사> 제2권이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읽어볼 엄두도 안 나던 책이었다. 두꺼운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체 내가 한국문학의 역사를 알아서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자 했던 것은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지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거대한 흐름이나 위대한 문장가들의 발자취가 아니었다.
대학 전공서적인 이 책들은 집 안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논술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간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입시 강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미리 공부해 두기 위함이었다. 이유는 설명하기 힘든지만, 무언가 분했다. 세상에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항상 내가 읽고 싶은 책만을 읽었다. 그러나 이번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읽었다. 별 볼 일 없는 자유 의지가 꺾인 것 같아 분한 건 아니었을까.
감정의 근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책을 고르게 만드는 기호는 어디서 발현되나.
취향이겠지. 나는 소설을 좋아하고, 공상과학이나 추리, 판타지 같은 장르 문학을 재밌게 읽는다. 그러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 류의 소설들은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여운이 길게 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순수문학 계열의 소설들은 읽을 당시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지만, 읽고 나면 며칠이고 감정의 여운에 시달린다. 그러나 순수 문학 계열의 소설 중 재미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운이 길게 남는 것도 아닌. 대체 왜 이 책을 위하여 나무는 베여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는지 모를 그런 책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까지만 서술하고, 그 후 어떤 장르의 소설을 선호하는지는 애매한 상태로 남겨둔다.
이러한 기호가 내게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소설이 아닌 공부를 위한 전공 서적을 읽게 된 상황에 분한 감정을 느낀 것일까. 공부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이 새삼스런 감정은 뭐란 말인가. 조금 더 감정을 음미해 본다. 서적에 나오는 경기체가와 가사, 시조 같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적 있는 용어들을 내려다보며, 한껏 억울해한다.
이렇게 요즈음의 나는 나를 분석하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내용이 잘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더 슬퍼진다. 가장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가던 시절에, 무언가 사고라도 크게 한번 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과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적정 부분에서 단칼에 끊어내 버린다.
그래, 일단을 책을 읽자. 문학의 역사를 아는 일이 문학의 창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은 오만한 독단일 확률이 매우 높을 테니. 나는 '공부'도 하며, 공부도 하는 것이다. 전자의 공부는 내 육신을 먹여 살리기 위한 투쟁이고, 후자의 공부는 먹고살 만한 인간들이 허무와 싸워내기 위한 수단이다.
원시 시대에서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시대까지. 오늘은 고려 시대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고려시대 문인들은 문학의 교시적 기능(교훈을 주거나 가르침을 주는 문학의 기능적 측면 중 하나)을 강조했다고 한다. 글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부단히 시도했다고 한다. 정치와 교화 같은 기능을 위해.
하지만 나는 문학의 또 다른 기능을 얻으려 한다.
그 기능이 실재한다고 믿으며,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선긋기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제 나는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역시 '선'을 긋기 위해서인 것 같다. 저 평범하게 늙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나는 무언가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아우성치기 위해...
예전의 문장가들은 권력가들이었다. 그들은 문장으로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고 무너뜨렸다. 그러한 역사의 끝에 서 있는 나는 문장으로 나를 경계 짓는다. 남들과 나를 끝없이 견주어 보면서도, 그러지 않은 척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고고한 어떤 가치에 목매고 있다.
참 비겁한 놈이구나, 이 생각이 들 때, 나는 무릎을 친다. 왠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분한 감정을 느낀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아서였다.
오늘 교훈은 나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 앞으로 나는 더 비겁해질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