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환급-3

돌려드립니다. 감사했습니다.

by 라면

문학 공모전 정보를 일자별로 정리한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며 탁상 달력에 마감 날짜들을 모두 적어 놓았다. 공모전은 생각보다 많았다. 이름 있는 문예지들은 매년 한 번 정도 신인상이라는 명목으로 신인 작가들을 모집했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신생 문예지들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신인상 원고를 모집했다. 달력에 모두 표시하고 보니 한 달에 서너 번 꼴로 신인상, 혹은 작가지망생들을 위한 공모전이 있었다. 달력에 공모전 마감 날을 동그라미 치면서 느끼던 설렘을 잊지 못한다. 이 수많은 공모전 중 내 작품 하나 받아줄 만한 데가 없을까. 또다시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나를 물 먹인 문학이라는 놈에 대한 눈먼 사랑이 나를 또 한껏 설레게 만들었다.


인터넷, 오프라인 서점에서 작가들을 위한 작법서를 구매하는 것도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이런 책이 작가들에게, 아니 정확히는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오만이었다. 하지만 이십 대 끝 무렵, 작법서를 구매하는 지금의 나 역시 그 마음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내게 재능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탓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예술에 가이드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모순되게 느껴져서였다.


하지만 회화에도, 작곡에도 기본적인 지침서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진정 그렇게 생각하다면, 입시할 때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꿈꿨던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들 역시 작법서를 많이 읽어 두는 것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 그 결과 약 다섯 권 정도의 작법서를 구매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작법서도 두 권 정도 있었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읽던 것을 이젠 시간을 정해 놓고 탐독했다. 내게 부족했던 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쓸데없이 나를 바꿔 놓는 것은 아닐까, 또다시 오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독서의 시간 역시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이 일련의 과정들. 이 과정에 중독된 청년들 대부분이 쓰디쓴 실패의 고배를 마시곤 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눈을 꼭 감았다. 사냥꾼에 쫓기는 장끼가 풀숲에 대가리를 처박듯이. 풀내음 꽃향기, 눈앞에서 노래하는 풀벌레. 집 앞에 있는 공원에 나가면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러면서 가끔 답답해지곤 하는 가슴을 달래었다.


세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일까.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언뜻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특정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만 떠오를 뿐이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글로 써 내려가면서도 두려운 문장이었다. 나는 정말 공무원을 그만둬야만 했나? 조금 더 체력을 키워 퇴근 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을 텐데. 그리 좋지 못한 집 안 경제 상황 때문에 그런 생각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래서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보기로 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 수 있는 그런 직업 위주로 찾아보았다.


처음엔 바이럴 마케팅 쪽에서 후기성 광고 문구를 작성하는 일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말았다. 그런 글을 쓰고 나면 누군가를 속이는 것 같아 왠지 찜찜했다. 또한 항상 글을 컨펌을 받아야 하는 일인 만큼 스트레스도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


다른 일을 알아보기 위해 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학원 강사를 모집하는 글들을 보게 되었다. 학원 강사라면 다른 직업보다는 여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학원 수업이라는 것도 길어봤자 두 시간일 뿐일 테고. 하루에 수업이 많다 해도 두세 번이 최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계산하면 하루에 4~6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은 없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 주던 것과, 교실 앞에 나서서 배움을 얻기 위해 월 일정액을 지불하는 아이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망설이는 와중에 보조 강사, 독서 논술 채용 강사 공고들이 눈에 보였다. 수업을 직접 하지 않지만, 학원에서 아이들을 관리해 주는 일을 할 것만 같은 이름이었다. 학원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 그 두 직업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강사라는 직업에 도전해볼까 고민하는 중에, 의원면직을 한 이유가 글 쓰는 데에만 몰두하기 위해서였는데 직업을 구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의 사념들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몰아간다. 능동성을 잃은 인간을 덮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부정적인 감정의 군단이다. 후회가 나를 엉망으로 버려 놓기 전에,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원 몇 군데 이력서를 보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환급-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