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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Feb 28. 2024

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벌써 7박 8일 일정 중 5일 차인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은 여행자 숙소에서 8시간을 달려 어르헝 폭포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였다. 푸르공을 타고 몽골의 평원을 몇 시간 달리다 보면 ‘여기서 조난당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고 풀밭에서 메뚜기만이 눈치 없이 폴짝폴짝 뛰겠지. 실없는 생각을 하며 푸르공 천장에 발린 가죽에 시선을 고정했다. 감각은 무뎌지고 차의 진동과 나만 남은 순간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때 예고도 없이 마을이 나타났다. 산의 능선을 따라 줄 맞춰 지어진 건물들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와-아, 여기서 마을이 갑자기 나와?”


얕은 물길을 조심히 건너고 작은 언덕 여러 개를 넘어 달려가던 중이었다. 주변에 전봇대도 없고 아스팔트 도로도 없는데 급작스럽게 등장한 마을에 놀랐다. 우리가 오아시스를 본 듯 놀라니 박자씨와 기사님이 박장대소했다. 몽골에서는 우리나라 군 단위의 마을을 ‘솜’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솜을 발견하고 나서 처진 푸르공 내부의 분위기에 활기가 돌았다. “저기에는 시원한 콜라도 있고 깨끗한 화장실도 있겠지?”, “아니야 그냥 차에서 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박자씨가 들뜬 우리에게 마을에서 제일 맛있는 곳에 가서 밥을 먹을 거라고 말했다.




마을에는 마트도, 은행도, 옷가게도 있었다. 꼬질꼬질한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느리게 지나가는 여유로운 곳이었다. 박자씨가 신중하게 골라 안내한 식당에서는 먹고 싶었던 돼지고기와 샐러드를 팔았다.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늘어져 있었다. 식사를 마친 비니가 위약을 챙겨 먹었다. 다들 어딘가 하나씩 아픈 상태였다. 여행을 더 할 수 있다는 오기, 더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작은 마을을 떠나 어르헝폭포 근처의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일정을 미루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새 숙소가 위치한 곳의 풀잎에는 이슬이 유난히 많이 맺혀 있었다. 숙소 근처로 나무 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었고 울타리에 마르지 않은 빨래들이 널어져 있었다. 새로 배정받은 게르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편안함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지금 하얗고 폭신한 게르 안에 누워있다. 옆에는 친구들도 있고 오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나는 정말 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하늘이 회청색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성미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철이와 비니는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다들 컨디션이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박자씨는 어르헝 폭포를 보러 가자고 했다. 폭포는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해서 본 어르헝 폭포는 별로였다. 크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폭포가 마음에 들었다. 폭포에서 돌아오는 캄캄한 길이 좋았다. 별도 달도 그리 밝지 않아서 모두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발밑을 비추곤 풀길을 사박사박 걸었다. 사방이 새카만 지평선인데 친구들이 있어서 무섭지 않았다. 서로 의지하며 걷는 우리 6명이 꼭 손잡고 모여있는 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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