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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Mar 03. 2024

아빠 말

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습하고 추웠던 초원의 밤이 지났다. 후드집업을 걸쳐 입고 종종거리며 게르 밖으로 나섰다. 세면장 유리창에 생긴 아침이슬을 보며 양치를 하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막에서 잠이 안 와 뒤척이던 날이 먼 일 같았다. 그간 이 여행이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창밖을 보는 이 순간만큼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상황도 마음도 달라졌다. 물기를 털어낸 칫솔을 들고 서서 소매를 잡아당겨 입을 닦았다. 숙소 울타리 밖으로 네모나게 생긴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느적느적 돌아다니는 야크들은 몽골에 온 지 6일 만에 등장한 동물이었다. 그간 건조기후, 냉대기후, 한대기후가 한 땅에 있는 몽골에서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풀이 자라는 곳에서는 소나 말을 볼 수 있었고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는 낙타를 볼 수 있었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야크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는데, 이번 숙소가 있는 곳처럼 풀이 자라지만 추운 곳에 와서야 털이 복실한 야크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투어 일정이었던 쳉헤르온천에 가는 길에서 야크를 또 만났다. 큰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에서 목을 축이는 야크 무리였다. 야크는 야크 우리는 우리. 우리도 생수를 꺼내 마시며 평평한 돌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검은색 덩어리들이 하는 일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봤다. 야크들이 가고 나서는 우리가 그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자씨가 물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뒤를 보라고 소곤거렸다.


“아빠 말이에요.”

“아빠 말이 먼저 물가로 가면 가족들이 물을 마실 거예요.”


제일 앞장서서 걷던 큰 말이 아빠 말이란다. 박자씨 말대로 아빠말은 성큼 뛰어 물가로 가더니 물을 마셨다. 아빠 말은 물을 얼마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주위를 살피려 물가에서 멀어졌다. 강이 굽이진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가려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아기 말들과 가족들이 조심스레 강물을 마셨다. 얼마 뒤에 아빠 말이 물가를 등지고 이동하려는 시늉을 하자 다른 말들이 빠른 걸음으로 모였다. 우리는 말들이 불편하지 않게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야크 다음은 우리, 우리 다음은 말, 물은 먼저 온 순서대로 마신다. 마실 만큼만 마시고 서로 경계하며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자리를 빠르게 비워준다. 아빠 말은 어린 말들이 물을 많이 마실 수 있도록 자신보다도 주변을 챙긴다. 욕심은 없고 사랑은 가득한 그들만의 규칙이었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나서도 가족을 바라보던 아빠 말의 시선을 오래 기억할 수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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