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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May 16. 2024

오늘 이 구역 미친년은 나인가?

2024. 04. 14. 일기장


지난번 연재 '남편은 부재중,

그 어디에도 남편은 없었다' 편에서

미리 공지한 처음 본 사람에게

헛소리를 시전 한 사연입니다.



봄이다.

감자 심고 고추 심는 시댁이

무척 바쁜 봄.


신랑은 시댁의 부름을 받고

일요일 아침부터 시댁행.

결국 첫째랑 둘째는 또다시 나의 몫.


나의 육아의 봄은 언제 오는가?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평일 무한루트의 컨디션에서

자유로운 주말의 휴일 맛은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집구석에만 있기는 억울하다는 판단 하에

집에서 안 나가려는 사춘기 초입 초4를

요즘 첫째의 관심사인 인라인 타기로 꼬셨다.


첫째는 아동 인라인 가방을 메고

나는 성인 인라인 가방은 뒤로 메고

물, 간식이 들어있는 백팩은 앞에 메고

한쪽 손엔 아직은 어린 둘째 손을

다른 한쪽 손에는 둘째 킥보드를 끌고

(이건 무슨 전쟁통 피난길도 아니고 한 짐이구나~)

개선장군처럼 도보 10분

공원으로 걸어서 도착!!


집 근처 공원에는 고맙게도 작년에

시에서 운영하는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생겼다.

아이 1명에 보호자 1명이나 2명은 나왔는데

아이 2명에 보호자 1명 온 일행은

우리 밖에 없구나.

작년에 실내 롤러장에 갔다 온 후

2번째 시승기라

지도자 겸 보호자 격으로 스케이트장에

내가 같이 들어가야 하는데

대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엔

6살 둘째는 아직 너무 어리다.

하는 수 없이 손에 유튜브를 쥐어 주고

오늘 한번 날 잡고 가르쳐 주자

큰맘 먹고 첫째랑 스케이트장 입성!!


두 돌 때부터 서서 그네를 탄 첫째는

운동신경 하나는 끝내줘서

아빠 힘들까 봐 두 발 자전거는

다섯 번 만에 타주시고

엄마 힘들까 봐 인라인도 두 번 만에

넘어지지 않고 타주시는

효녀로 등극한 날


아슬아슬 넘어지지 않는 거에

본인도 놀랐는지

너무 재밌다며 쉬지 않고 타기 시작하는데

첫 돌부터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

"같이"를 어미에게 강요하며

꼭 같이 타야 한다고 물귀신 작전으로

그 넓은 스케이트장을 50바퀴 정도는

함께 돈 거 같다.

나도 돌아버릴 지경!!


슬슬 유튜브시청에 지루함을 느끼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해지는 둘째에게 가야지~~

둘째에게 가면

"엄마, 나 좀 봐. 잘 타지? 빨리 와!!"

연신 불러 제끼는 첫째에게 가야지~~

스케이트장 안과 밖을 퐁당퐁당

왔다 갔다 하는데

슬슬 체력의 한계가 왔다.


원래 바퀴 달린 요런 건

아빠가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2시간 동안의 극기훈련이 끝나고

20년 만에 탄 인라인으로 인해

연신 후달거리는 다리를 끌며

바리바리 짐 보따리를 챙기고

양쪽 애들 챙기고 귀갓길에 오르는데

숨어있는 복병이 있었으니

둘째였다.


연신 앉아 있었으니 힘이 남아도는 둘째는

집에 가는 길에 놀이터를 발견하고

놀다 들어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

결국 집까지 100m를 남겨 두고

어미는 2차전으로 놀이터에 투입.

영혼은 이미 저 세상에 가버렸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둘째를 봤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놀이터에 온 부자.


돗자리에 모래놀이 장난감 한 캐리어까지

집 앞 놀이터인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서

아들과 밀착놀이를 해 주시는 아버님.

('슈퍼맨이 돌아왔다=슈돌'

출연진 같은 모범생 아빠)


아이가 싫증을 낼 때쯤

모래놀이에 물놀이로 놀이 확장을 해주겠다며

한달음에 집까지 세네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물 양동이를 떠다 나르시는 슈돌 아버님.


급기야 자기 아들과 또래로 보이는

우리 둘째까지

챙겨서 놀아주시는데

전생에 영유아 문화센터 강사님이셨나

하고 탐복하며 바라보았다.


평소 컨디션 같았으면

"어쩜 이렇게 잘 놀아 주세요.

저희 애까지 챙겨주시고 감사드려요"

인사치레 말을 건네었을 텐데

이미 나의 상태는 영.혼.가.출.


전 날 토요일도 신랑의 부재로

아이들만 데리고 실내동물원에 갔다 온

여파가 아직 남아있었던 거 같다.

이틀 연속 겹피로에 점점 동공은 풀리고

다크서클이 내려옴을 느꼈다.

결국 나의 눈은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슈돌 아버님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 "엄마 상태!! 메~~~롱!!" >


따님 이름이 XX 맞죠?
 아들이 지금 어린이집으로 옮기기 전에
같은 어린이집 다녔는데~

아!! 어쩐지 아드님 얼굴 낯이 익다 했어요.
같은 반이었나~~ 아이가 몇 살이죠?

6살이요!!

아. 2014년생이요?

에? 2014년생이요? 2019년 생인데!!

아~~ 죄송해요.
제가 잠깐 딴 생각하느라
첫째 생년을 말해 버렸네요.

요즘 만 나이 계산법이 달라져서 재차 확인하다

첫째 생년을 답한 정신 나간 어미의

미친 질문은 계속되는데


기억나요. XX어린이집 같이 다녔잖아요.
(둘째가 지금 다니는 시립 XX어린이집
이전에 다녔던 어린이집)

XX어린이집이요?
아닌데!! 시립 XX어린이집이요!!
(둘째가 지금 다니는 시립어린이집)
어린이집 끝나고 바로 앞 공원에서
애들이 같이 놀았었잖아요~~

얼굴이 급정색되신 슈돌 아버님.


나 오늘 왜 이러니

슈돌아빠는 우리 딸 이름도 기억해 주는데

어린이집도 헷갈려 말하고

제발 그 주둥이를 열지 마.

모르면 말을 하지 말란 말이야!!

하지만

이미 뇌와 입은 따로 놀기 시작하며

기어코 최악의 말실수를 해버리는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실은 아이 둘 데리고 요 앞 공원에 있는
피겨 스케이트장을 갔다 왔더니
너무 힘들어서 자꾸 말실수를 하네요.

요 앞 공원에 피겨 스케이트장이 있어요?
인라인 스케이트장 아닌가~~

어머!! 제가 잠시 미쳤나 봐요.
 맞아요. 인라인 스케이트장~~ ㅠㅠ

아!! 네~~~~


야!! 미쳤니? 여기서 피겨가 왜 나와?

순간 김연아 님을 왜 소환해!!


그 후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 슈돌 아버님

........................


순간 내 머릿속엔

PRODUCE 101  나야나(PICK ME) 노래가

BGM으로 깔리는 데~~~


이 구역 미친년은 나야 나!!

나야 나!!

너만을 기다려 온 나야 나!!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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