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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Dec 27. 2023

신생아 지옥 입문 편

그림 - 백일의 기절

눈 크게 뜨면 나(엄마) 닮고

눈 실눈 뜨면 너(아빠) 닮은

깨어있을 때는 나(엄마) 같고

자고있을 때는 너(아빠) 같은

제3 행성에서 온 외계인과의 첫 조우 같은 신비롭고 오묘한 감정!!

하지만 그 신기한 감정은 오래가질 못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밤새 우는 첫째의 샤우팅에 현타가 온 것이다.


아기가 밤에 이렇게 자주 깨는 것에 대해 왜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은 건지~~

분유광고에서는 아이가 얌전히 젖병을 무는 모습만 보여주고 안 먹으려고 고개를 홱 돌리며 버티는 아기 모습은 왜 안 보여준 건지~~

내 첫 경험에 왜 순둥이 아기를 주지 않으신 건지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신세계 지옥 체험 이었다.

인간이 살면서 제일 중요한 의식주!

세 가지 중 그 무엇 하나 충족 되는 게 없는 신생아 케어월드!


< 의 > 내 생각대로 입을 수 없는 옷. 제대로 걸치기만 해도 다행인 게 남편들은 퇴근할 때마다 항상 열려 있는 앞섶 수유티를 보게 될 것이다.

< 식 > 밥을 정량 정시에 먹을 수 있는 건 사치. 살려거든 먹을 수 있을 때 입에 쳐 넣어라.

< 주 > 32평 집을 18평으로 만들어 버리는 매직. 퇴근남들~ 신생아 키우는 집이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큰 오산이다. 내일 출근할 때 입을 옷이나 속옷이 있으면 다행이라고 여겨라.

1주 산후조리원과 2주 산후도우미 지원이 끝난 첫 육아 독립 날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침에 출근하는 신랑 바짓가랑이를 어찌나 부여잡고 싶던지 그리고 삼십 분 단위로 쳐다보게 되는 시계. 째려본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니건만 시간은 어찌나 안 가던지 신랑 퇴근시간만을 마냥 기다렸다.

그리고 분명 산후도우미 분이 있었을 때는 시간 맞춰 젖을 빨던 아이가 나랑 둘이 남게 되자마자 입에 물리려고만 의 경기 수준으로 젖을 거부했다.

몇 시간째 안 먹는 아기를 보며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닌가 싶어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분유먹이는 법 검색하고 서둘러 젖병을 소독하는 사이 아기는 목 터져라 울어재끼기 시작하고 나는 긴장감에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그때 퇴근한 신랑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고 나는 신랑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아 펑펑 울고야 말았다.

왜 이제 왔냐고, 애가 젖을 안 먹는다고,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냐며 눈물 콧물 땀범벅에 시뻘게진 내 얼굴.

지금도 신랑은 그날 일을 갖고 놀리지만 그때는 지구가 두 쪽날 것 같은 절망이었다.

그날은 얼마나 심각했는지 다음 날 뉴스에 영아사고사로 내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은 상상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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