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서 신생아를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나 보다. 두 손 두 발 항복을 외쳤고 그때부터 신랑과 나는 육아동지였다.
믿을 사람은 우리 둘이 전부. 낮이고 밤이고 적군의 공격을 대비하는 한 팀이었다.
하지만 적군의 무차별 공격이 발발할 때는 꼭 새벽녘이었다.
결국 침대에 있는 이불들을 다 끌어가지고 와서 거실에 대자로 폈다.
왼쪽은 아빠, 오른쪽은 엄마, 그 가운데는 아기.
왼쪽은 청결 담당.
오른쪽은 배식 담당.
아기가 배고파 울 땐 내가 깨서 젖을 물렸고
아기가 축축함에 찡찡거릴 땐 신랑이 깨서 기저귀를 갈았다.
우리의 전투력은 나날이 상승했고 2인 1조 완벽한 팀이었으며 우리의 동지애는 눈물겨웠다.
그러나 가끔 한쪽의 전투력이 무너질 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신랑의 야근날이거나 아이가 아플 때!
그날의 총알받이는 온전히 나였다.
하루는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열이 38도를 넘어밤새 칭얼거리는 날이었다.
야근하고 온 날이라 애가 울어도 들리지 않는지 코 골며 자는 신랑이 어찌나 밉고 괘씸한지 결혼까지 후회가 될 정도로 나의 서러움은 바닥을 쳤고 이 세상에 나와 아기 둘만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불안감에 아파서 자꾸 잠을 깨는 아이에게 '섬집 아기 (엄마가 섬 그늘에)' 자장가를 부르는데 새벽녘 그 노래가 어찌나 구슬프던지 아기를 재우며 펑펑 울었다.
(왜 노래에도 아빠는 안 나오는 것인지~ 엄마랑 아이만 나온다.)
이건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노래방에서 질질 짤 때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외로움이다.
그 노래가 시작이었나. 우리 모녀에게 그 밤이 특별했나. 우리 첫째는 슬픔 절절한 노래에만 잠이 들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모차르트의 자장가 이런 명곡이 아닌 첫째의 자장가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이다.
신랑은 아이 정서에 안 좋다고 자장가가 너무 우울하다고 하는데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가 너무 다크 해서~
(에필로그)
우려와는 반대로 너무나 깨 발랄하게 자란 밝은 첫째.
하지만 여기서 반전!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첫째가 길을 가다 가끔 ‘너를 위해’ 노래를 흥얼거리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