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요즘 내가 속으로 되뇌는 말이다.
어느 주말 신랑이 회사 사람 결혼식 참석한다고 영등포로 간다고 했다.
둘째를 데리고 간다고 하는데
오랜만에 영등포타임스퀘어 나들이를 가 볼 요량으로 나도 가는 길에 태워달라고 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오는 비에 짜증날만 한데
간만에 화장하고 샤랄라 나들이에 기분은 업업!!
신랑도 간만에 지인을 만날 생각에 업되 보였다.
그래도 게으른 신랑은 우리 둘 치장 끝날 동안 본인 몸 하나 단장을 못하고
출발하자 하니 결혼식장 뭐 입고 가냐고 한다.
그래도 오늘 김기사 역할 수행 중이니 기분 좋게 옷장에서 손수 양복 찾아주고
신발장에서 구두 챙겨 주고 나름 속으로 참을 인 세 번을 외쳤다.
결국은 출발하는 세 가족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다 무료 코디해 주시고 차량에 탔는데
손수 현관문에 배치한 구두를 안 신고 왔다는 것.
화가 났지만 그래 이 산만 넘으면 돼.
한숨 깊게 들이쉬고 우산을 다시 펴서 집에 가 구두를 챙겨 왔다.
그럼 그동안 손가락 운동 겸 네비 좀 찍으면 안 되나?
준비된 아이 달랑 태워서 차에서 그동안 뭐 한 건지
아직 결혼식장 초행길 네비도 안 찍는 푸파파.
내가 싫어하는 신랑 운전습관 중 하나다.
출발 전 도착지 네비를 찍는 게 정석 아닌가
꼭 출발하면서 운전 중에 네비를 찍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신랑 운전습관은
운전 중 수시로 핸드폰 보기, 그 외에 사실 많다.
운전하면서 네비 찍기, 핸드폰 보기, 전화하기, 라디오 틀어놓으면서 핸드폰으로 멜론 노래틀기, 둘 다 튼 것도 정신없는데 여기에 애들까지 합세해서 떠들면 난 운전 중이지도 않는데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제발 하나만 틀어라고 말하기를 수십 번.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
밥상을 받으면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를 튼다거나.
아이들 밥 먹을 때 틀지 말라고 하면 본인 혼자 먹는 것처럼 핸드폰 보면서 밥을 먹는데
자기는 뭐 안 틀어 놓으면 불안해?
왜 그래? 난 정신없어 죽겠어!!
알겠다고 하는데 안 고쳐 치는 육아 14년 동안 불치병이다.
출발하면서 네비 조작하는 것부터 불안 불안했는데
스마트뱅킹해야 한다고 핸드폰을 만지면서 운전하시고
스마트뱅킹 운행시간 에러에 걸렸는지 뭐가 안 되는지
계속 핸드폰을 조작하는데 뒷좌석에서 나는 불안모드
좀 정차해서 하라고 했더니 본인도 안 되겠는지
갓길에 세워 핸드폰을 만지는데 15분이나 흐른 거 같다.
출발할 때 되지 않았어?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하면 안 돼?
1차는 한 귀로 흘리더니 시간은 흐르는데 해결은 안 되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중에 하겠다며 출발.
나중은 개뿔. 자유로 타고 얼마 안 가 또 핸드폰을 또 만지작만지작
아무리 교통 체증에 차가 안 간다고 해도 앞에 대충 보고 브레이크 밟고 옆에는 보는지 뒤에 애가 탄 걸 의식은 하는지 내 속은 터질 것 같고 그때부터 내 기분은 점점 지하 바닥으로 내려갔고 이제 나도 입을 다 물었다.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일상생활 질문을 물어보는데 나는 대답도 반응도 시큰둥.
그리고 한 삼십 분 달렸나.
신랑 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고 결혼식장에 지인이 자기는 벌써 도착했다고
언제 올 거냐고 확인 전화를 건 것이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그제야 똥줄이 탔는지 바짝 긴장해서 운전대를 잡더니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앞만 보고 달리는데 나는 불안함에 차 위에 손잡이를 잡기까지 ~ ㅠㅠ
신랑이 잘하는 특기가 있다.
네비 보고 속도제한에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기!!
단속카메라 구간을 벗어나면 속도를 또 부아아앙 올리는데
한 달 전 2분 간격으로 날아온 2장의 과속법칙금이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저 인간은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건가~~ 개선이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대표이사 딸 결혼식도 아니고 이제는 회사를 그만둔 직장 전 동료를 만나는 결혼식장인데
좀 늦으면 어떤가~~
뒷좌석에 어린 딸이 탔는데 안전 운전이 먼저 아닌가 싶은 게 그때부턴 애아빠로도 안 보이기 시작.
이래서 남자는 그 성격을 알려면 운전할 때 모습을 보면 된다는데
내가 그걸 간과해서 사람을 잘못 만났나 싶은 게 이제는 배우자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이미 내 기분은 지하 100층!!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 200미터 남짓 남은 거리에서 우회전하는데
앞에 차 급정차에 본인도 딴 데 정신 팔았다가 브레이크를 빡!! 밟는데
뒤에 차가 우리 차에 박을 뻔했는지 빠~~ 앙!! 굉음같은 경적소리를 내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내 심장은 순간 사고가 난 줄 알고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땐 나도 이성을 읾음. 당장 이 미친 운전자가 모는 차에서 아이를 데리고 내리고 싶었다.
아~~ 쫌!!
아까부터 운전 좀 조심하라고 했잖아!!
좀 늦으면 어떻다고 딸이 탔는데
운전을 그딴 식으로 하고 싶어? 당장 내려줘!!
저 차가 잘못한 거지~ 내가 잘못한 거 아냐!!
아~~ 진짜 짜증 나!!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운전 개떡같이 한다
도착하자마자 일부러 차문을 쾅 닫고 내렸고 그 소리에 곤히 자던 순둥이 둘째도 깼다.
정말 내 입에서 '개떡'이란 말은 처음 나온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이지 입에 게거품이 날 정도로 화가 폭발했다.
아이 보는 앞에서 싸우느니 보지를 말자 차에서 펄쩍 내릴 때 정신이 없어 우산도 안 챙기고 내렸다.
타임스퀘어까지 보슬보슬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데 답답한 마음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로 하소연.
평소 신랑의 습관과 정리가 전혀 안됨을 아는 친구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혹시 너희 신랑 성인 ADHD 아닐까?
한번 검사해 봐!
생각지도 못한 ADHD얘기에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비를 맞으며 골똘히 생각을 하다 보니 열도 좀 가라앉는 느낌.
한편으로는 정말 검사를 한번 받아봐야 하나?! 하며 속으로 드는 샤우팅!!
으이구 인간아~~~ 이렇게 예쁜 강이지를 태우고
그렇게 개떡같이 운전하고 싶니?
지금껏 14년을 같이 산 남의 편을 다른 각도로 한번 냉정적으로 관찰 좀 해보고 검사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고심을 하며 영등포 타임 스퀘어 쇼핑으로 기분전환을 하려 했으나
결국 럭셔리한 쇼핑몰은 나와 맞지 않음을 느끼고
내 본성이 끌리는 대로 구제삘 영등포 지하상가로 자연스레 발길을 돌림.
방금 전만 해도 이혼하고 싶네 뭐네 해도 뭐가 예쁘다고 신랑 양말을 구매하고 있는지
나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 맞나 보다. 휴~~~
그리고 이 와중에 첫째 잠옷, 둘째 헤어 핀을 구입하는 나를 보며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