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며 사라지는 건 많습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도 줄고, 몸의 기력도 약해지지요. 잘 키워놓은 자식도 하나 둘 집을 떠나고, 피부도 푸석하면서 치아도 흔들립니다. 나이 들며 중요한 건 얻는 게 아니라 ‘잃지 않는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들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기 얼마나 어렵던지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맘 편할지도 모르겠네요. 업무상 만나더라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편하지요.
반면 친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납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처럼 함께했던 추억은 옅어지고, 기억도 멀어져갈 뿐이지요. 어쩌다 동창회나 결혼식, 장례식장에서 만나더라도 이별의 오랜 시간을 허물긴 쉽지 않습니다. 적당하게 안부를 묻다가 “그래.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며 헤어질 땐 오히려 안도감마저 들곤 하니까요. 세월은 사람을 점점 더 어렵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재 너머 성권롱 집에 술 익닷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송강 정철(1536~1593)이란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관동별곡>이란 작품으로 유명하지요. 그래요.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된 후 관동 팔경을 유람하며 쓴 것이요. 어려운 옛날 말들 잔뜩 나왔던 학창시절의 그 작품 말이에요.
정철은 원래 잘 나가던 정치인입니다. 조선 중기 서인(西人)의 영수로, 요즘으로 치면 여당 대표였지요.
당시엔 당파 싸움이 심했습니다. 잘 나갈 땐 여당 실세였지만, 때로 탄핵을 받아 유배를 떠나야 했으니까요. 그는 부침이 심한 삶을 살아야만 했답니다.
유배중이던 어느 날, 정철은 친구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술이 익었단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풍류를 즐겼던 그이기에 놓칠 수 없었지요. 누워 있는 소를 발로 차서 깨운 뒤 금세 성권롱(성혼, 1535~1598)의 집 앞에 도착합니다.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습니다. 작품엔 여정의 과정도 모두 생략되어 있지요.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작품 마지막 줄은 당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둘은 만나서 술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얼마나 기뻤을까요? 한편으론 부럽네요.
문득 내게도 거리낌 없이 연락할 친구가 있나 돌아봅니다. 글쎄요.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는 많지만 통화 한 번 안 해본지 몇 년쯤 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찾아가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소보다도 빠른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만, 친구를 만나려고 몰고 간 게 언젠지 잘 기억나지 않네요.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그동안 바빴습니다. 아니 무심했습니다. 이런 변명이 부끄럽네요.
작품을 읽은 후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입니다. 전에 어머니 장례식 때 본 이후로는 너무나 오랜만이었지요. 망설임이 반가움과 친밀함으로 변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도 저의 연락을 기다렸던 걸까요? 어쩌면 그럴 수도요. 오랜만에 수다를 떨고, 카톡을 주고 받다가 결국 짧게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당시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 <슬램덩크>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곳의 배경인 도쿄 에노시마로요. 그리고 더 나이들기 전에 또다시 함께 다녀오기로 했지요. 오랜 친구와의 연락을 이어준 송강 정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