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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r 02. 2024

최소한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 <허생전>

학창 시절에 배운 <허생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허생이 부자가 된 과정이 인상 깊었는데요. 돈 일만 냥으로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입해 물가를 폭등시키고, 나중에 열 배나 비싸게 되팔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 역시 돈을 벌려면 저렇게 해야 해!’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작품을 잠시 떠올려볼까요? 밤낮으로 글만 읽던 허생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의 성화에 집을 나섭니다. 그는 부자였던 변씨에게 찾아가 돈 일만 냥을 빌립니다. 그리고 경기도 안성으로 가서 과일을 모조리 사들입니다. 이윽고 나라에 잔치나 제사를 지내지 못할 정도가 되자 허생은 열 배 값에 되팔지요. 그는 다시 제주도로 건너가 말총을 사들입니다. 이윽고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하자 망건값이 열 배로 뛰었고, 허생은 큰돈을 벌지요. 


이제 허생은 도적들을 데리고 빈 섬으로 들어가 삶의 터전을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와 변씨에게 빌린 돈을 갚고, 그간의 내력을 설명하지요. 이야기를 들은 변씨는 허생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그를 어영대장 이완에게 소개합니다. 허생은 이완에게 나라를 구할 세 가지 대응책을 제시합니다.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 등용, 치욕을 씻기 위한 명나라 후예와의 결탁, 그리고 청나라와의 전략적인 교류였지요. 하지만 이완은 세 가지 계책 모두 어렵다며 거절합니다. 이에 허생은 이완을 크게 꾸짖고 종적을 감추는 것으로 작품은 끝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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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허생전>을 읽어보니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허생과 도적의 만남 부분인데요. 잠시 보지요.     





전라도 변산반도에는 도적 떼 수천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지방의 고을과 군에서 군졸을 풀어서 체포하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도적 떼도 감히 나돌아 다니며 노략질을 함부로 할 수가 없어서 바야흐로 굶주림에 허덕였다. 허생이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서 괴수를 달랬다.

“천 명이 천 금을 털어서 나누면 한 사람 앞으로 얼마의 돈이 돌아가는가?”

“한 사람에 한 냥씩 돌아가지요.”

“자네들에게 아내가 있는가?”

“없답니다.”

“가진 밭뙈기라도 있는가?”

도적들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밭 있고 아내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적이 된단 말이오?”

“자네들이 그렇게 잘 안다면 어째서 장가를 들어 살림을 장만하고, 소를 사서 밭을 갈 생각은 하지 않는겐가? 그리되면 살아서 도적놈이란 이름도 없을 것이고, 집에 살면서 부부의 즐거움도 있을 것이며, 나돌아다녀도 관에 붙잡힐 염려가 없을 것이고, 길이길이 의식의 풍요함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찌 그런 생활을 원하지 않겠소이까? 다만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을 뿐입죠.”     



변산반도가 위치한 부안지역은 바다와 산, 평야가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땅과 바다가 기름지고 생활이 윤택하니,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이곳을 '나라의 창고'라 일컬었지요.


하지만 가장 풍요로운 곳엔 역설적이게도 도적이 많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선 이들을 ‘변산적’이라고 칭했는데요. 나라의 골칫거리였던 이들은 조선사회의 이중성을 잘 보여줍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백성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결국 도적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과도한 세금과 수탈이 문제였지요. 도적으로 내몰린 이들은 피난처인 변산으로 모여들었고, 그 수는 점점 많아집니다. 백성이 도적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이르는 동안, 사회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지요. "돈이 없어서 인간다운 생활을 못하다."라는 도적들이 항변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지난 몇 년동안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서울과 수도권이 그랬지요. 그 와중에 집을 가진 ‘벼락부자’ 수십만 명과 집 없는 ‘벼락거지’ 수백만 명이 생겼났습니다. 둘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벌어졌습니다. 


당시의 정부는 수많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유효하지 못했습니다. 전세값도 덩달아 치솟았지요. 집 없는 이들은 전세금 마련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대출받거나 멀리서 출퇴근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점점 커졌지요. 정권 교체 이유로 부동산을 꼽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주거’는 의식주의 마지막이자, 완성입니다. 주거 없는 삶, 즉 ‘주거 부재’는 삶 전체의 불안을 야기합니다. 집 없는 이는 언젠가 집을 마련하길 원합니다. 영원히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불안 속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빌려준 집에서 잠시 생활할 수는 있지만, 안정된 자기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번 허생이 도적들을 빈 섬으로 데려가 집을 준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다음 날이 되어 바닷가에 허생이 돈 삼십만 냥을 싣고 나타나자, 모두 크게 놀라 허생에게 줄을 지어 절을 하였다.

“오직 장군의 명령대로 따르겠소이다.”

“있는 힘대로 지고 가게나.”

그리하여 도적들이 돈을 짊어졌으나, 사람마다 고작 백 금을 넘지 못했다. 허생이

“너희들 힘이란 게 고작 백 금을 들기에도 부족하거늘, 어찌 도적질이라도 변변히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너희들은 비록 평민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이미 도적의 명부에 올라 있으니 어디 갈 곳도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터이니, 각자 백 금씩 가지고 가서 아내를 얻고 소 한 마리씩 장만해 오너라.”

하자, 군도들이 모두 좋다고 승낙하며 흩어졌다.

그동안 허생은 이천 명이 한 해 동안 먹을 양식을 장만하여 그들을 기다렸다. 도적들이 기한한 날짜에 모두 도착해 뒤에 처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모두 배에 싣고,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적을 모두 쓸어 가자 나라 안에는 도적 걱정이 없어졌다.

한편 섬으로 들어간 허생과 도적들은 나무를 찍어서 집을 짓고, 대나무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다 보니 온갖 곡식이 심는 대로 크고 무성하게 자라고, 김을 매고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허생은 도적들에게 백 냥씩 줍니다. 그 돈으로 아내를 얻고 소 한 마리씩 장만해 오도록 하지요. 아내를 얻는다는 건 가족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족은 최소한의 사회공동체이지요. 소를 장만토록 한 것은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허생이 도적을 구제한 방법은 현대 국가의 복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요. 실제로 인구는 감소세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지요. 부담이 현재를 지배하고, 비관이 미래를 압도할 때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부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코로나 이후 자산을 더욱 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졌던 모든 것을 잃는 이도 많습니다. 특히나 수많은 소규모 자영업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사회적 취약계층도 늘고 있습니다. 뉴스에는 경제고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자주 보도됩니다.


학교를 졸업해 어른이 되어보니 힘든 세상이란 걸 알게 됩니다. '이상향'이란 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다고 가볍게 여겨야 할 가치라고 보진 않습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주거와 가족을 포기하고 도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현대사회라면 정부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살만한 곳은 ‘빈 섬’이란 작품 속 가상공간이 아닌, 우리가 사는 이곳의 목표가 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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