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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r 13. 2024

무모함과 집착에 대하여, <만선>

미국 라스베가스에 간 적 있습니다. ‘환락의 도시’라는 명성다웠지요. 멋진 장소가 많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로비의 카지노를 반드시 거쳐야만 했고, 방 안에는 그 흔한 전자렌지나 커피포트조차 없었습니다. 프론트에 요청해도 “없다.”라는 말뿐이었어요. 내려와서 사 먹고, 온 김에 카지노에서도 돈 쓰라는 의미였지요.     


게다가 이곳 거리에는 노숙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특이했지요. 미국 여타의 도시엔 약에 취한 많은 이들이 어슬렁거렸거든요. 알고 보니 이곳은 노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보이는 대로 족족 체포한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슬롯머신 당기는데 이들이 어슬렁거리면 방해가 되니까요.     


카지노 풍경도 떠오릅니다. 바깥 시간을 알 수 없도록 만든 어두운 조명, 자욱한 담배 연기, 끝없이 돌아가는 숫자들, 레버를 당기는 사람들, 딜러와 게스트의 공방전, 쉼 없이 오기는 칩들, 송신기로 무언가를 말하는 유니폼 입은 매니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눈빛이었습니다. 슬롯머신 계기판에 비친 눈빛, 상대의 카드를 노려보는 눈빛, 반짝이는 황금을 찾는 욕망의 눈빛..... 뜨내기 방문자인 저에게 집착에 가까운 그 눈빛들은 무섭고도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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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어안이 벙벙해서) 너, 너무나 시일이 짧읍니다요! 나는 오늘부터 사흘 안으론지 알었지라우!

[임제순] 무슨소리? 어지께 자네하고 합의한 것인께 계약날은 어지께여야 되지 안컸어?

[곰치] 글씨라우- 글씨라우----

[임제순] (벌떡 일어서며) 뭇이여? 씨- 자네가 그런다먼 나다 파계하고 다시 배를 묶겄어!

[곰치] (황급히 일어서 임 제순의 팔을 잡고는) 아닙니다!! 영감님 말씀이 옳지랍녀! 예! 예!           



<만선滿船>의 주인공 곰치는 어부입니다. 나이 든 그는 자기 배 한 척 가지지 못했고, 마을 부자로부터 삯배를 빌려 고기를 잡았지요. 하지만 벌이는 시원찮았고, 빚에서 벗어날 방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날 곰치는 바다의 수많은 물고기 떼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빚을 갚으라며 배를 묶어 놓았지요. 모처럼 찾아온 만선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그는 다음 날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에 손도장을 찍고는 풍랑을 무릅쓰고 바다로 향합니다.

     

곰치는 만선의 꿈을 이루었지만 배는 파도에 뒤집힙니다. 이로 인해 함께 나갔던 아들 도삼과 딸의 애인인 연철을 잃고 자신만 겨우 구조되지요. 아들을 잃은 충격에 아내 구포댁은 정신 이상자가 됩니다. 애인을 잃은 딸 슬슬이도 큰 슬픔에 빠지지요.


      


[구포댁] (숨이 막혀) 오냐아, 오냐 주죽여라아 어서어 내새, 새끼는 갔다! 무, 뭍으로 가 뿌렀어

[성삼] (곰치의 팔 매 달리며) 뒈저! 어서 뒈저뿌럿!

[구포댁] (뚱 나가 떨어지며) 히히히 만석인디 내가 으째죽어? (일어나 마당을 뱅뱅 돌며) 슬슬아아

너도 범쇠한테 가그라마 범쇠는 배를 주리지야! (닭쫓듯, 시늉을 하며) 어서어! 어서어-

[성삼] (얼굴을 감싸 버리며) 후유

[곰치] (절규하듯) 이 미친 것아! 몇년 있으면 그물 손질할 내 새끼를 으따가 띄워보냈어 어엉?

미친 사람처럼 살기 등등해서 구포댁에게 달려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곰치는 만선의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 남은 어린 아들마저 열 살이 되면 어부로 만들기로 결심하지요. 이에 구포댁은 남은 아들까지 바다에서 죽게 할 수 없다면서, 아들을 빈 배에 몰래 태워 육지로 보냅니다. 곰치는 배를 멈추러 쫓아 나가고, 아내는 이를 만류하지요. 그 와중에 빚 때문에 아버지뻘 되는 이에게 팔려 갈 처지가 된 딸 슬슬이는 스스로 목을 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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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수능에도 출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많이 강조했지요. 인간과 자연의 대결, 부성과 모성의 다툼,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 등 다양한 갈등이 작품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거친 삶, 불굴의 의지, 강인한 집념, 남성다움, 도전과 파멸, 거기에서 느껴지는 비장미.... 그래서일까요? 어린 저에겐 곰치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작품을 다시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곰치는 행복할까?”였습니다. 만선의 꿈을 이룬다면 곰치는 행복했을까요? 글쎄요. 제 경험상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거액의 빚을 내일까지 갚겠다는 불가능한 조건을 걸고라도 폭풍에 배를 띄우는 ‘무모함’과 바다에 두 사람을 잃은 뒤 기어코 막내아들까지 어부로 만들겠다는 ‘집착’을 가진 곰치 같은 사람의 삶이 만족과 행복으로 차 있는 걸 보진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이의 주변 사람들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막내를 몰래 뭍으로 보낸 구포댁이 현실적인 사람이지요. 차라리 구포댁도 같이 갔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착하는 대상이 돈이든 종교든 정치적 신념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에요.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제가 불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얻은 소중한 지혜입니다.     


동시에 저부터도 좀 더 유연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가치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상대를 힘들게 만들고 있진 않은지 말입니다. 지금까지 제 곁을 떠나보낸 이가 몇이나 될까요? 말없이 삭인 이는 또 얼마나 될까요? 곰치를 떠올리면서 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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