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우리 집에 강도가 든 것은 공교롭게도 그날 밤이었다. 난생처음 당해 보는 강도였다. 자꾸만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귀찮다고 뿌리쳐도 잠자코 계속 흔들었다. 나를 깨우려는 손의 감촉이 내 식구의 그것이 아님을 퍼뜩 깨닫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빨간 꼬마전구 불빛 속에서 복면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똑바로 내 멱을 겨누고 있는 식칼의 서슬도 보았다. 술냄새가 확 풍겼다.
한밤중에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복면 쓴 강도는 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칼까지 들었으니 무서울 법하지요. 하지만 나는 애처로는 마음이 듭니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권씨였지요.
강도는 서툴기 그지없습니다. 집안에 들어올 땐 구두를 벗습니다. 화장대 쪽으로 돈을 가지러 갈 땐 실수로 잠든 아이의 발을 밟고 깜짝 놀라며 아이를 토닥여주지요. 심지어는 바닥에 칼을 놓는 일까지 저질러서, 내가 건네주기까지 합니다. 복면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강도보다 주인이 더 여유롭지요.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광주대단지 사건>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울시가 시내 무허가 판잣집 정리사업을 하면서 철거민들을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경기도 성남시)으로 집단 이주시키려 했지만, 투기와 졸속행정으로 1971년 대규모 빈민투쟁이 벌어진 사건입니다. 결국 백여 명이 부상 당하고 주민 23명이 구속되었지요.
사실 학교에서 이런 건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도 잘 모르고, 시험에 나오지도 않아요. 무허가 판잣집 정리사업은 학생들의 관심사도 아니니까요. 저 역시 학창 시절엔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쳐 왔던 것이지요.
소설 속 ‘나’는 교사입니다. 오랜 셋방살이 끝에 집을 마련해서 방 한 칸을 세놓았는데, 그곳에 한 가족이 옵니다. 권씨 가족입니다. 권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했습니다. 지식인이자 번듯한 직장을 가졌던 그가 왜 남의 집 셋방을 전전했을까요?
술이 들어갈수록 그는 더욱 창백해졌으며, 너름새가 좋아졌다. 술이 그를 지껄이도록 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말했다.
“모든 게 무리였지요. 우선 나 같은 인간이 태어난 그 자체가 무리였고, 장질부사나 복막염 같은 걸로 죽을 기회 다 놓치고는 아둥바둥 살아나서 처자식까지 거느린 게 무리였고, 광주단지에다 집을 마련한 게 무리였고, 이래저래 무리 아닌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권씨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잘 나갈 때 사놓은 구두도 열 켤레나 되었지요. 하지만 술 한 잔 들어가자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은 ‘유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 집 마련의 유혹. 서울에서 통근가능한 곳에 가족의 안식처를 꾸릴 수 있다는 유혹. 소시민의 작고도 커다란 유혹이었지요.
“난생처음 이십 평짜리 땅덩어리가 내 소유로 떨어진 겁니다. 내 차지가 된 그 이십 평이 너무도 대견해서 아침저녁으로 한뼘 한뼘 애무하다시피 재고 밟고 하느라고 나는 사실은 나 이상으로 불행한 어느 철거민의 소유였어야 할 그것이 협잡으로 나한테 굴러떨어진 줄을 전혀 잊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나한테는 이 세상 전체가 끽해야 이십평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게 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저기서 20만원을 빌립니다. 자기 형편엔 무리인 거금이었지만, ‘내 집’에 대한 유혹은 너무도 컸지요. 그는 그 돈으로 철거민의 입주권리를 손에 넣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투자 열풍이 불고, 국회의원 선거도 끝나면서 상황은 바뀝니다. 시에서는 보름 안에 땅에 집을 짓지 않으면 취소하겠다는 통지서를 보냅니다. 또한 이들에게 평당 8천~1만 6천원에 이르는 땅값을 일시불로 내게 하지요. 토지 취득세 부과통지서도 발부하고요.
돈이 많아서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밀려드는 통지서를 감당할만한 사람도 없었지요. 시의 이러한 조치에 사람들은 위원회를 조직해 투쟁합니다.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권씨도 그곳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항의 시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돈도 직장도 잃고, 이제 전과까지 얻게 된 권씨.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날품팔이라도 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셋집을 전전해야 했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권씨가 ‘나’의 학교로 찾아옵니다.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병원에 갔는데,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수술비 10만원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나는 갈등합니다. 10만원은 큰돈입니다. 지금 돈을 가지도 있지도 않을뿐더러, 빌려준다 해도 그가 갚는다고 확신할 수 없지요. 상황은 딱했지만 나는 에둘러 거절합니다. 하지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학교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 병원에 가져다줍니다. 덕분에 권씨의 아내는 무사히 출산을 마쳤지요.
강도가 든 건 그날 밤이었습니다. 나는 어설픈 강도가 한눈에 권씨임을 알아봅니다. 낮에 있던 상황을 몰랐던 그가 주인집에 온 것입니다.
“도둑맞을 물건 하나 제대로 없는 주제에 이죽거리긴!”
“그래서 경험 많은 친구들은 우리 집을 거들떠도 안보고 그냥 지나치죠”
“누군 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나? 피치 못할 사정 땜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강도를 안심시켜 편안한 맘으로 돌아가게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대개 그렇습니다. 가령 식구 중에 누군가가 몹시 아프다든가 빚에 몰려서……”
그 순간 강도의 눈이 의심의 빛으로 가득 찼다. 분개한 나머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떨면서 그는 대청마루를 향해 나갔다.
내 말에 권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자신의 정체를 들킨 부끄러움, 갈기갈기 찢긴 자존심,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죄책감, 자신에 대한 실망감.... 온갖 생각으로 가득했겠지요.
강도는 허둥지둥 당황하며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본분을 망각한 채 부주의하게도 셋집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하지요. “대문은 저쪽입니다.” 내가 그의 실수를 지적한 건 훗날을 위한 부득이한 조처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의 남은 자존심마저 깨뜨려 버렸지요.
그날 이후로는 권씨를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오지 않았지요.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나 싶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아홉 켤레의 구두뿐이었습니다. 그가 신은 한 켤레의 그 구두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깨달으며 작품은 끝납니다.
---------------------
학창시절에 이 작품을 배울 땐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배경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구두’는 ‘인간적 위엄, 자긍심’을 뜻하며, 주인공은 현실에서 패배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적 위신과 체면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참고서의 주제 정도만 기억했지요.
어른이 되어 작품을 다시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시민은 빈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집이 있는 사람은 자산이 늘고,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어집니다. 내 집에 향한 꿈은 점점 멀어지고, 높아진 전세값마저 감당하기 벅차지요. 코로나와 같은 상황에서도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진 대다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소시민들입니다.
권씨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듭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실하게 살며,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꿈꾸었죠.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고, 권씨는 몰락합니다. 아내의 출산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설픈 강도짓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저 운이 나빴던 걸까요? 아니면 사회에 문제가 있던 걸까요? 혹은 내 집 마련의 꿈은 소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치였던 걸까요?
권씨의 삶은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변화가 단지 권씨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지금도 수많은 소시민은 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요. 전월셋집을 전전하는 이들이 안정된 집을 마련할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요? 권씨 같은 아픔을 지닌 이가 점점 적어질 날이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