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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r 15. 2024

말(言)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대천 바다 한가운데>

동네에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적당한 결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대체로 마음에 드는데 딱 한 가지가 불만입니다. 시끄럽다는 점입니다. 케이블 종편 정치 뉴스를 항상 크게 틀어놓고 있습니다. 특정 정당의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혹은 반대편 누군가를 비난하는 - 둘 중 하나인 뉴스를요. 게다가 선거철이기에 그 정도는 더욱 심했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있고, 정치 성향도 제각각이니 불평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주머니가 정치인 누군가를 욕해도 딱히 신경 쓰진 않습니다. 그게 제 머리를 깍는 데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면요. 다만 ‘말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임교사 시절의 일입니다.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활용한 교육을 한 적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신문마다 얼마나 다른 시각으로 서술하는 지 비교해보는 활동이었지요.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신문마다 그 논조는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너무나 커서, 가르치면서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에 귀 기울여야 할까요? 가르치는 저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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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바다 한가운데 중침 세침 빠지거다

여남은 사공 놈이 끝 무딘 상앗대를 끝끝이 둘러메어 일시에 소리치고 귀 꿰어 내단 말이 이셔이다 임아 임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임이 짐작하소서     



짧은 사설시조입니다. 큰 바다 한가운데에 바늘이 빠졌답니다. 그런데 열 명의 사공이 끝이 무딘 삿대(얕은 곳에서 배질할 때 쓰는 장대)로 동시에 건져냈다고 합니다. 흠, 글쎄요. 말도 안 되는 얘기네요. 믿기 어렵지요.


그렇기에 마지막 줄에서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말을 해도 제대로 짐작하라고요. ‘~하소서’라는 부분에서 화자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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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의 시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말하기 쉽고, 듣기도 쉽습니다. 말을 나르는 플랫폼도 넘쳐나고, 글이나 영상으로 전하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모든 말이 진실은 아닙니다. 허무맹랑한 거짓도 많고, 남을 속이기 위한 사기도 많습니다. 의도를 숨긴 음흉한 말도 있고, 의도를 드러낸 뻔뻔한 말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지 않은 말이라면 흘려듣거나 넘겨듣고, 좋은 말이라도 비판하며 듣는 게 필요합니다. 현혹되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을 청하는 작품 속 화자의 말처럼요. 아예 듣지 않는 것도 좋지요.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라면요.      


어른이 된 지금은 말보단 본질을 보려 합니다. 사건이라면 팩트이고, 사람이라면 행동이지요. 말이란 변하기 쉽고, 바꾸기 쉽고, 포장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습니다. 그렇기에 말만 믿진 않습니다. 어지러운 수많은 말보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자 합니다.     


어른이라면 남의 말에 너무 기댈 필요 없습니다. 그걸 판단의 유일한 잣대로 삼을 이유도 없습니다. 현혹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살아온 날을 보면 살아갈 날을 알 수 있고,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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