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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r 22. 2024

간절함을 잊은 그대에게

<원왕생가>

화창한 봄날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벚꽃이 핀다고 합니다. 2024년도 벌써 4분의 1이 지나고 있습니다. 


매년 사람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어야지.’, ‘다이어트에 성공해야지.’, ‘출퇴근할 때 영어 회화를 꼭 들어야지.’ 등을요.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매년 그렇듯이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어른이 되어 국어책을 넘겨보다가 저는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 정토까지 가시렵니까?  

가시거든 무량수불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부처님께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향가(鄕歌)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부터 부르던 오래된 노래입니다. <서동요>,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들어보신 적 있지요? 전부 다 향가입니다. 여기 있는 <원왕생가> 역시 향가인데요.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지요.     


신라 문무왕(626~681) 때 광덕과 엄장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둘 중 누구든지 먼저 서방정토(죽은 사람들이 가는 불교의 이상향)에 갈 때는 서로 알리기로 약속했지요.     


어느 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소나무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였습니다. 문득 엄장의 집 창밖에서 소리가 들렸지요. “나는 이제 가네. 그대도 곧 따라오게.” 라고 말이지요. 깜짝 놀란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구름 밖에선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리고, 밝은 빛이 뻗어져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엄장은 광덕의 집에 갔습니다. 과연 그는 죽어 있었지요. 광덕의 아내와 장례를 치른 엄장은 과부가 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사는 게 어떠하오?”라고요.     


광덕의 아내는 고민을 하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엄장이 정(情)을 통하려 하자 여인은 거절하며 말했지요. “당신이 정토에 가기를 바라는 건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요. 깜짝 놀란 엄장이 그 이유를 묻자 광덕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광덕은 나와 십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저녁마다 단정히 앉아 염불을 하며 16관(극락에 가기 위해 도를 닦는 16가지 방법)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빛이 창에 비치면, 그 빛에 도를 닦았습니다. 정성이 이러하였으니 어찌 극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엄장은 크게 부끄러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원효대사를 찾아가 잘못을 뉘우치고 한마음으로 수행했지요. 결국 세월이 지나 그 역시 극락정토로 가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          



<삼국유사>에 실린 이 이야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통일신라는 불교 국가였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 불교에도 내세(來世)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요. 현세에 덕을 쌓아 내세에 극락정토로 가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원왕생가> 역시 ‘극락왕생을 원하는 노래’를 뜻하지요. 

    

광덕은 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하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극락왕생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부처님께 전해달라고 달에게 말하지요. 그리고 부처님께도 말합니다.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즉, 자신을 여기에 남겨두고는 48가지 소원(극락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48가지 소원)을 이룰 수 없다고요. 자기를 극락정토로 보내야 부처님도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당돌함과 염원이 느껴집니다

     

“간절함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글쎄요, 지금의 저라면 대답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젊을 땐 모든 게 간절했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싶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싶었지요. 원하는 곳에 취직하고 싶고,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지금보다 나아질 미래를 떠올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삶은 간절함 그 자체였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내 안의 절실함은 눈 녹듯 점점 사라져버리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신년 계획들만 남은 것처럼요.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은 ‘간절함’에서 그 동력을 얻지 않을까요? 광덕에게 그 마음이 없었다면 10년 넘게 수행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오랜만에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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