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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Feb 28. 2024

힘들어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학창 시절엔 많은 시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시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다와 나비>는 특별합니다.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 그 위를 위태롭게 날아가는 흰 나비, 물결에 젖은 날개, 어두운 밤하늘 속 새파란 초승달 - 시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요. 마치 한편의 그림을 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시에서 가장 멋진 표현은 ‘공주처럼 지쳐서’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에 높은 경쟁을 뚫고 어렵게 교단에 섰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교직이 청무우밭인 줄 알았답니다. 현실을 깨닫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요.      

            

개인 사정 때문에 학교와 집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매일 1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했지요. 고속도로 통행료가 부담되어서 경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반 아이들이 예뻤지만, 담임으로서 해야 할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걷어야 할 것도 많고, 나눠줄 것도 많고, 알려줄 것도 많았지요. 분리수거장이 어디인지부터, 누가 괴롭혀서 힘들다는 아이, 내신 점수가 안 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학부모 상담 전화까지 응대해야 할 일이 매일 쏟아졌답니다.                    


교직 첫해엔 교무부로 배치되었습니다. 출근 첫날 부장선생님이 무슨 공문을 올려야 한답니다. 물론 어떻게 올리는지는 따로 배운 적 없었습니다. 여유롭게 물어 볼 분위기도 아니었지요. 요령껏, 알아서, 알음알음, 쉬쉬, 물어물어 처리해야 했답니다.

                    

수업은 두 개 학년을 걸쳐 들어갔습니다. 가르칠 건 많았고, 준비할 시간은 턱없이 적었지요. 일주일에 두 번하는 야간자율학습 감독 시간은 그 주의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밤 10시.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끝내고 퇴근하는데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대고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요? 똑똑 소리가 났지요. 놀라서 잠을 깨보니 경찰이 창문에 노크를 하고 있었지요. “여기에 차를 대고 있으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범죄라도 저지른 것 마냥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시동을 걸고 자리를 떴지요.


                     

누구나 사회 초년생으로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지요. 늘 ‘공주처럼 지쳐서’ 교직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보충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시를 가르치면서 나비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던 기억이 나지요.                    


지금도 저는 매일 100km를 운전합니다. 자동차만 경차에서 전기차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나비처럼 서글프지 않습니다. 쉽게 지치지도 않아요. 높은 물결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바다 위를 제법 잘 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세월이 힘인 걸까요? 어쩌면 그럴 수도요. 힘들어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한 번쯤 이 시를 권하고 싶습니다. 

               

나비처럼 약한 그대여, 조금만 더 힘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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