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억전>
오늘(2024.05.08)은 고3 전국연합평가일입니다. 고3이 되어 치르는 두 번째 모의고사이지요.
아침에 반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농담을 건넸습니다.
"오늘 시험 너무 잘 보지 않아도 돼."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6월, 9월, 수능까지 성적 조금씩 올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러니까 지금 너무 잘 보지 마."
그러자 긴장도 좀 풀어지고, 팽팽했던 교실 분위기도 좀 누그러듭니다. 아이들 얼굴에도 약간의 미소가 돕니다.
모의고사부터 수능까지, 그리고 토익에 진급시험까지 우리는 여러 시험을 치릅니다. 시험을 보기 전 바짝 긴장됩니다. ‘내가 아는 문제가 나와야 할 텐데….’ ‘다 맞아야 하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요. 저는 학창 시절 시험을 치를 때, 끙끙거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출제자가 와서 나 대신 문제를 풀어 주면 어떨까? 그럼 진짜로 좋을 텐데….’
이번에 볼 작품의 주인공 ‘유광억’은 시험의 신(神)입니다. 그는 돈을 받고 과거 시험을 대신 봐 주었지요. 유광억이 쓴 글을 제출하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그러면 뛰어난 재주를 지닌 주인공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1등부터 3등까지 모두 내 글이라네
유광억은 영남 합천 사람입니다. 시를 잘 지었기에 그 지역에서 무척 유명했지요. 특히나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 합격은 개인 차원을 넘어 가문의 존망이 달린 문제였기에, 수많은 양반이 일생의 목표로 잡고 시험에 매달렸지요.
이런 상황에서 유광억의 재주는 더욱 빛났습니다. 일례로 과거 시험이 있을 때 유광억이 서울에 가면 가마 한 채가 그를 맞이합니다. 그러고는 화려한 건물로 그를 데려가서 날마다 값진 음식을 대접하지요. 그곳 주인 대감은 사나흘에 한 번씩 들러 유광억에게 경의를 표하며, 과거 시험지와 같은 종이에 시를 써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주인 아들은 그가 대신 지은 글을 제출하여 진사에 오릅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며 유광억은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다만 본인은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날이 갈수록 이름만 유명해지지요.
하루는 경시관(시험관)이 경상 감사와 내기합니다. 이 지역에서 유광억이란 사람의 글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의 글을 알아보고 장원으로 뽑겠다고 말이지요. 참고로 지금의 대입 논술이 그렇듯, 과거 시험도 답안지에 응시자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쓴 부분은 다른 종이를 덧대어 보이지 않게 가렸어요. 물론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서지요.
이제 과거 시험장입니다. ‘영남 시월 중구 놀이를 열었으니 남북의 기후가 같지 않음을 감탄한다’라는 시제(試題)에 맞춰 다른 시를 써내야 합니다. 곧바로 답안지 한 장이 제출됩니다. ‘중구의 이 잔치도 시월에 열 수 있고 북쪽 손님이 이곳에 오셔서 남쪽의 술을 마시는구나’라는 문구가 쓰인 답안지입니다.
글을 본 경시관은 감탄합니다. 그는 이것이 필시 유광억의 시라고 생각하여 장원으로 뽑습니다. 그리고 제법 괜찮은 또 다른 시를 각각 2등, 3등으로 뽑지요. 이제 종이를 덧댄 곳을 뜯어 작성자의 이름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유광억이란 이름은 없습니다. 경시관이 알아보니 1∼3등 모두 유광억의 글입니다. 돈을 받고 시를 쓰되, 받은 액수에 따라 다른 수준의 글을 써낸 것이지요.
경시관은 진술서를 받고자 사람을 시켜 유광억을 데려오도록 합니다. 딱히 그를 벌주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단 자기가 내기에서 이겼음을 밝히고 싶었지요. 그러나 광억은 경시관의 의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두려워하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야말로 과거 법규를 해치는 도적이니, 감옥으로 가더라도 역시 죽을 것이다.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낫겠다.”
광억은 친척들과 밤새 술을 마십니다. 그러고는 사람들 몰래 나가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지요.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유광억전」은 조선 후기 이옥(1760~1815)이 지은 한문 소설입니다. 친구인 김려(1766~1822)가 편찬한 『담정 총서』의 「매화 외사」에 실렸어요. ‘전(傳)’은 한 인물의 삶을 보여 주는 양식입니다. 마지막에 “외사씨는 말한다.”라는 구절을 덧붙여 작가가 그 인물의 삶을 평가하지요. 우리는 그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작가가 전하는 핵심 주제니까요.
매매 가능의 시대, 그리고 사회의 역할
“얼마면 돼?” 한때 유행한 드라마 속 대사입니다. 지금은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 말에는 ‘사랑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생각해 보니 사랑뿐만이 아니네요. 얼마 전 큰 문제가 되었듯, 그 누군가는 유명 대학의 입학자격을 돈과 권력으로 샀습니다. ‘속세를 떠나 학문을 연구하고 예술을 즐긴다’는 상아탑의 유래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작가 역시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던 조선 후기의 현실에 대해 말합니다.
천하에 팔지 못할 물건이 없다. 몸을 팔아 남의 노예가 되는 자도 있다. 심지어 가느다란 터럭과 형체가 없는 꿈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사고판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팔았다는 일은 없었다. 어찌 물건은 다 팔 수 있거늘, 마음이라 하여 팔지 못하겠는가? 유광억 같은 자는 바로 그 마음을 판 자가 아니겠는가?
유광억은 자신의 재능만 판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양심과 도덕성 모두를 팔았어요. 그래서 유광억의 최후는 비참했으며, 작가는 이런 비극적 상황이 결국 자업자득이었다고 말하지요. 또한 작가는 이런 일을 개인의 일탈로만 여길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의미심장합니다.
아아, 슬프도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매매를 글 읽는 사람이 한다고 했던가? 법전에는 ‘뇌물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은 죄가 같다.’라고 되어 있다.
무슨 뜻일까요? ‘수요와 공급’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가 운동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10만 원에 팔려고 합니다.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너무나 흔한 물건이니까요. 파는 사람 역시 수요가 없으니 곧 자취를 감출 거예요. 다른 누군가는 지리산 꼭대기에서 물 한 병을 1,000원에 팔고자 합니다. 거기서는 그럭저럭 물이 팔릴 거예요. 산 정상에는 목마른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요. 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파는 사람도 하나둘씩 늘어나겠지요.
수요는 공급을 만듭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위조를 하든 부정한 방법을 쓰든, 어떻게든 시험에 합격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결국 시험 합격을 파는 사람도 생깁니다. 작품 앞부분에는 “시골에서는 향시(鄕試)의 과시(科詩)를 팔아 생계를 잇는 자가 많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실제로 유광억 같은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에요.
뇌물을 준 사람이 나쁜 것처럼 받은 사람 역시 잘못이 크겠지요? 마찬가지로 거짓된 방법으로 과거에 합격하려 한 이들 역시 잘못이며, 더 나아가 이런 사태를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묵인한 조선 사회 역시 잘못입니다.
실제로 과거 시험에서는 부정이 횡행했습니다. “지난번 방방(합격자를 축하하는 의식)에서 생원과 진사를 다른 사람이 하여 시험에 합격한 자가 있으니, 오로지 시험 치르는 곳이 엄하지 못하여 시제를 누설해서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가시 울타리를 튼튼하게 설치하여 출입하는 사람을 엄하게 금하소서.”(『조선왕조실록』: 성종 18년 2월 23일)라는 기록에서 보듯 시험장 관리는 허술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와서는 응시자가 시험장 밖으로 나가 답안지를 작성하거나, 몰래 책을 가져와서 베끼기도 했지요. 게다가 채점을 다 하기 어려우니 답안지 제출을 선착순으로 받아 등위를 매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가의 큰일을 이토록 허술하게 처리했으니, 유광억 같은 이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네요.
만약 인간의 장기를 마음대로 팔 수 있도록 국가가 허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납치와 인신매매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거예요. 인간의 존엄성 역시 크게 훼손될 테고요.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가 이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지요.
현대 물질 사회에서 이(利)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에도 정도(定度)가 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일지라도 학문적 양심, 인간의 존엄성, 도덕성 등은 예외가 되어야겠지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팔지 말아야 할 마지막 남은 보루니까요. 그리고 이런 소중한 가치를 지켜 내는 것이 이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