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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y 15. 2024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것

<꽃>

얼마 전 고졸 검정고시 감독을 다녀왔습니다. 고사본부에서 시험지를 받아 교실로 향합니다. 출입문을 열자 어린 청소년부터 만학도까지 여러 응시생이 앉아 있습니다. 검정고시는 수능과 다릅니다. 과목 수는 많고, 시간은 짧고, 문제는 수능과 비교도 안 되게 쉽지요.     


하지만 응시생 모두에게 쉽진 않았나 봅니다. 1교시 국어부터 고민하는 얼굴이 보입니다. 뭐가 그리 고민일까요? 저도 시험지를 슬쩍 봅니다. 앞장에 제가 좋아하는 시가 실려 있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오랜만에 이 시를 보니 반가웠습니다. 학창 시절에 이 작품을 처음 배울 땐 ‘참 좋은 시구나!’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제 이름을 아는 학교의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한 반에 40명인데다, 저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거든요. 교무실에 불려 갈 일도, 선생님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도 보통은 번호로 불렸지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니 왜 당시 선생님들이 학생을 번호로 불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름을 외우는 게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더군요. 담임교사가 아니면 필수사항이 아니라 더욱 그렇습니다. 매년 만나는 학생만 최소 100명이 넘기에, 때로는 헷갈리고 까먹기도 하지요. 갑자기 찾아온 졸업생을 보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민망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졸업생이 찾아온다고 연락오면, 앨범을 다시 한번 뒤적여보기도 합니다.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저 역시 상대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요. 서로에게 ‘꽃’이 되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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