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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May 22. 2024

나는 얼음 같은 아버지일까

<결빙의 아버지>

학교에 있다 보면 먹을 게 종종 생깁니다. 옆 선생님이 준 초코파이부터 급식에 나온 짜요짜요, 학년에서 준 공차, 졸업생이 가져온 조각 케이크 등 자잘하게(?) 얻는 게 있지요.


저는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받은 건 고스란히 가방에 넣어옵니다.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에게 말하지요.


“아빠 가방에 먹을 거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가 제 가방을 뒤집니다. 그리고는 얼른 꺼내서 먹지요. 그 모습을 보면 흐뭇해집니다. 마치 원시 시대에 사냥에 성공한 아버지가 사냥감을 풀어놓는 느낌이랄까요. 동시에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零下)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이수익, 「결빙의 아버지」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합니다. 어린 시절 화자는 가난했습니다. 밖은 추웠고, 겨울밤의 외풍은 심했지요. 아버지의 품 안은 집안에서 온기를 느끼며 추위를 견딜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팍은 어린 화자가 잠들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지요.     

  

세월이 흘러 다시 추운 겨울입니다. 이제 아버지가 된 화자는 잠든 아이들을 보며 이불을 덮어줍니다. 그리고는 과거를 떠올리지요. 나를 품어 주던 아버지의 가슴은 한 줌 뼛가루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어느 날 화자는 한강 다리를 지나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지요. 부드럽고 여린 물살이 흐르도록 영하의 추위를 막으며 새하얀 얼음으로 변해버린 그 강물 표면을 보면서 화자는 생각합니다. 저것이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라고요.           




학창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땐 우울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당시 저에게 아버지는 ‘얼음’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아버지가 되면 지금의 아버지와는 달라야겠다고만 생각했지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지요. 그동안 이 시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이 작품을 다시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결빙의 아버지’로 살고 있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추운 외풍을 견딜 따뜻한 온기를 아이들에게 주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또한 스스로가 겨울 얼음이 되어 그 아래에서 아이들이 평온하게 삶을 살도록 보호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이요.      


제 아이들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겠지요. 나중에 이 시를 읽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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