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오더: 제국의 흉내도 낼 수 없었던 집단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로 다시 읽는 마음

이야기로 읽는 마음

1.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에서 읽는 마음


1-1+. 퍼스트 오더의 마음 : 깨어난 포스 다시 보기+


카일로 렌이라는 인물을 곱씹다 보니,

자연스럽게 퍼스트 오더라는 집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토록 불안정한 인물이 핵심에 있는 조직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이쯤에서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스타워즈를 전혀 모르던 한 노인이,

우연히 스타워즈 게임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이쪽은 레지스탕스고,

저쪽은 스페이스 나치라는 거군.”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혁명연합 편을 골라

제국 플레이어들을 유린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은 2차대전 당시 실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일화는 스타워즈가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설명보다 직관으로 보여줍니다.


폭력과 공포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파시즘에 맞서,

자유와 저항을 선택하는 레지스탕스의 이야기.

스타워즈의 세계는

그만큼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퍼스트 오더는,

이 직관이 즉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퍼스트 오더는 제국의 외형을 집요하게 흉내 냅니다.


제복과 경례, 군사 퍼레이드,

위압적인 연설과 거대한 병기들.

겉모습만 보면 분명 제국의 후계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집단은 제국이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은하 제국은 폭력적이었지만,

적어도 ‘유지하려는 질서’가 분명한 체제였습니다.

통치의 명분이 있었고,

그 명분을 실행하는 행정과 군사 구조가 있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전 게임 [스타워즈: TIE 파이터]의 오프닝에서

황제는 제국군을 불러 모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국은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곧 은하계 전체에

평화와 질서(Peace & Order)가 회복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닙니다.

제국은 최소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고 믿는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힘이라는 하나의 질서 아래,

은하에 ‘평화’를 강제하겠다는 목적 말입니다.


에피소드 1~3의 프리퀼 트릴로지 역시

구공화국의 혼란과 무력함,

그리고 팰퍼틴이 제시한 ‘질서 회복’의 논리를 통해

이러한 제국의 목적이

어떤 역사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등장했는지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반면 퍼스트 오더는

무엇을 지키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생겨나서 왜 싸우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반복되는 것은 파괴와 과시입니다.


그래서 퍼스트 오더는

실패한 제국이라기보다,

애초에 제국이 될 수 없었던 집단처럼 보입니다.


이 점에서 퍼스트 오더는

고전적인 파시즘과도 다릅니다.

파시즘은 왜곡된 방식이었을지언정,

언제나 ‘질서’를 약속했습니다.

폭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습니다.


퍼스트 오더에게는

그 약속 자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상징과 분노,

그리고 강함을 연기하려는 제스처뿐입니다.


이 모습은 현실의 신나치/극우 집단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나치의 상징을 숭배하지만,

국가를 운영할 비전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폭력과 혐오는 넘치지만,

체제 설계는 없습니다.

신나치는 파시즘의 부활이라기보다,

파시즘이 더 이상 체제가 될 수 없게 된 사회에 남은 잔상에 가깝습니다.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가 아니라,

질서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며

파괴를 반복하는 존재들입니다.


퍼스트 오더 역시 같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 흐름은 현대 정치의 한 장면과도 겹쳐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들 중 일부는

그를 파시스트로 인식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바꿔줄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닙니다.

질서를 세우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의 세계가 잘못되었고,

무언가가 뒤집힐 것 같다는 감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퍼스트 오더의 정서입니다.


지킬 세계는 없지만,

부수고 싶은 세계는 분명한 상태.

그래서 파괴가 변화처럼 느껴지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그 세계가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는지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퍼스트 오더의 행동은

방향을 갖지 못한 채 반복되고,

끝내 공허로 남습니다.


이렇게 보면,

퍼스트 오더는 제국의 재현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페이스 나치’가 되기에도 실패한 집단입니다.


제국을 흉내 내지만,

제국이 감당했던 질서와 책임은 견디지 못합니다.


스타워즈가 원래

레지스탕스와 파시즘의 명확한 대립을 그린 신화였다면,

퍼스트 오더는 그 신화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이 집단은

위협적이면서도 공허하고,

거창해 보이면서도 허술합니다.


이 질문은,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해체됩니다.


라스트 제다이는 이 제국 흉내의 시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려 합니다.

그 시도가 성공했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로 읽는 마음 #1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에서 읽는 마음

1-1. 카일로 렌은 왜 끝내 아무 역할도 되지 못했을까

1-1+. 퍼스트 오더: 제국의 흉내도 낼 수 없었던 집단

1-2. 전쟁이 사라진 자리에서 : 라스트 제다이의 불편한 마음

1-3. 완결된 신화를 다시 열다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선택한 봉합의 방식

1-4. 레이의 마음 : 자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가질 수 없었던 주인공

1-5. 너무 이른 실패, 그러나 다시 읽어야 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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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이 아닌, 나치의 외형을 흉내 낸 퍼스트 오더.

겉모습은 위협적이지만, 그 안에는 지킬 질서도 비전도 보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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