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로 렌, 역할을 갈망하는 시대의 마음

- 베이더의 그림자

이야기로 읽는 마음

1.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에서 읽는 마음


1-1. 카일로 렌, 역할을 갈망하는 시대의 마음

- 베이더의 그림자


세상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를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때로는 화가 나게도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것은 가상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이야기들은 현실보다 더 강하게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어떤 이야기는 잠깐 웃고 지나가지만,

어떤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는

우리가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빼앗아 버리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스타워즈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스타워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신화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은하계의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신화의 구조가 담겨 있었습니다.


평범한 청년이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고,

스승을 만나고,

두려움을 넘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


그래서 스타워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신화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세계는 더 넓어졌고

이야기는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의 마음은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그 질문을 따라

스타워즈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마음으로 읽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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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는 거대한 세계와 수많은 인물을 지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신화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스타워즈를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에피소드 7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한 인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바로 카일로 렌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카일로 렌을

‘중2병 캐릭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미성숙함 자체가

이 인물의 매력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함을 과시하며, 어딘가 어설픈 악당.

그렇게 부르면 설명이 끝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다시 보니,

그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인물을 그렇게만 불러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카일로 렌은 일관성이 없는 인물입니다.


다스 베이더를 숭배하면서도,

그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외면합니다.


강함을 동경하지만, 그 강함을 감당할 내적 기준은 없습니다.

그는 권위적인 존재처럼 행동하려다,

감정이 흔들리면 곧바로 폭발합니다.


냉정한 지휘관의 얼굴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얼굴이

한 인물 안에서 계속 충돌합니다.


이 일관성 없음은 설정의 허술함이라기보다

오히려 이 인물의 핵심처럼 보입니다.

카일로 렌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는

다스 베이더를 닮은 마스크를 쓰는 모습입니다.


이 마스크는 기능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생존을 돕지도, 전투 능력을 강화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마스크를 씁니다.

그리고 분노의 순간,

스스로 그것을 산산이 부숴 버립니다.


이 장면은 명확합니다.


그는 자기 마음 속의 베이더가 되고 싶어 하지만,

베이더처럼 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권위를 흉내 내지만,

그 권위가 요구하는 책임은 견디지 못합니다.


이 불안정함은 대중문화에서도 빠르게 감지되었습니다.


Saturday Night Live의

‘언더커버 보스’ 패러디에서

카일로 렌은 좋은 상사가 되고 싶어

청소부로 위장해 부하들 사이에 섞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라이트세이버가 “좀 이상하다”고 말하자,

그는 곧바로 칼을 들고 나타나

"이것봐, 이렇게 멋지잖아!"

라고 화를 냅니다.


이 장면이 웃긴 이유는 단순합니다.

카일로 렌은 어떤 역할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위자도, 개혁자도,

심지어 ‘좋은 상사’조차 되지 못합니다.


이 패러디는 이 인물을 조롱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두가 느끼고 있던 불안정함을 정확히 짚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게 됩니다.

카일로 렌은 단순히 미성숙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지킬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강함의 이미지만 붙잡고 있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이어받아야 할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

그래서 그는 부수고, 소리치고, 흔들립니다.


에피소드 7~깨어난 포스~는 이 불편한 마음을

의외로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인물은 멋있기보다는 불안하고,

위협적이기보다는 어딘가 공허해 보입니다.


카일로 렌은 실패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는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는 시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현실과도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다만 이 질문은,

다음 편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라스트 제다이는

이 불안정함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보려 합니다.



이야기로 읽는 마음 #1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에서 읽는 마음

1-1. 카일로 렌은 왜 끝내 아무 역할도 되지 못했을까

1-1+. 퍼스트 오더: 제국의 흉내도 낼 수 없었던 집단

1-2. 전쟁이 사라진 자리에서 : 라스트 제다이의 불편한 마음

1-3. 완결된 신화를 다시 열다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선택한 봉합의 방식

1-4. 레이의 마음 : 자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가질 수 없었던 주인공

1-5. 너무 이른 실패, 그러나 다시 읽어야 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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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과 맨 얼굴의 두 모습. 어느 한쪽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카일로 렌의 모습은 그의 불안정함을 잘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