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의 나라에서 혁명을 기대하게 된 이유

마음이 말하는 정치 1. 진보와 보수로는 말할 수 없는 마음

마음이 말하는 정치 이야기

1. 진보와 보수로는 말할 수 없는 마음


1-3. 미국, 헌법의 나라에서 혁명을 기대하게 된 이유


“트럼프는 뭔가 바꾸어줄 것 같아서.”


이 말은 단순한 호불호의 표현이라기보다, 변화를 바란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구조와 정서를 지닌 사회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매우 독특한 국가입니다.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중심으로 형성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미국을 이민국가라고 부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은 헌법을 중심으로 한 시민 종교의 국가입니다.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라는 규범과 가치 체계에 참여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사회의 정치적 대립은 이념이나 계층보다는,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총기 소지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총기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가 헌법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서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지만, 같은 경전을 놓고 논쟁하는 모습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미국 정치의 갈등은 시민 종교 내부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조 위에서 미국은 오랫동안 하나의 강력한 신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미국은 정의롭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대륙, 풍요로운 자원, 수백 년간 이어진 안정,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 냉전에서의 우위. 히틀러라는 절대악을 물리치고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진영을 이끈 나라라는 서사는 미국 사회 전반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이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을 때에도, 미국이라는 질서 자체에 대한 믿음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러한 신화는 정치 담론뿐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스타트렉은 규범과 협력, 제도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미래를 그렸고,

스타워즈는 선과 악이 분명히 구분되는 세계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영웅 서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스타트렉을 '미국의 이상', 스타워즈를 '미국의 신화'라고 말하며

[스타워즈로 본 세상]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의 편, 질서를 회복하는 존재로 상상해 왔습니다.

헌법이 교리라면, 이러한 서사들은 시민 종교를 떠받치는 우화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이 신화는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9·11 테러는 “미국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무너뜨렸고,

이라크 전쟁은 “미국은 정의롭다”는 확신에 균열을 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시장 경제적 시스템 신화를 붕괴시켰습니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를 이해해 온 이야기 전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후 미국 사회에 확산된 감정은 분노 이전에

허무감이었습니다.

질서가 틀렸다는 분노라기보다,

질서 자체가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냉소와 조롱이 강해진 것도 이러한 흐름 위에 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는 이 허무주의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이미 퍼진 감정을 증폭시킨 공간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등장합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미국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세계의 안정을 해친다”

라고 말합니다. 이 비판은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부 젊은 층과 유권자들에게 트럼프는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존재’

로 인식되었습니다.

그가 뭔가 대단한 비전을 보여주었거나 안정적이어서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나타납니다. 전통적으로 안정을 중시해 온 공화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들이 안정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정을 회복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정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선택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이러한 선택도 미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와 비슷한 심리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특히 변화에 대한 기대와 보수 정당 지지가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음이 말하는 정치 이야기

1. 진보와 보수로는 말할 수 없는 마음

1-1. 젊은 남성이 보수화되었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1-2. 변화를 바라는데, 왜 보수 정당을 선택할까?

1-3. 미국, 헌법의 나라에서 혁명을 기대하게 된 이유

1-4. 안정을 바란다면서, 왜 불안을 선택할까? ~한국의 보수 정당 지지 다시 바라보기~

1-5. 일본, 위탁된 안정의 장기 귀결

1-6. 우리는 정말로 진보와 보수 중에서 선택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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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미국 청소년이 가장 닮고 싶었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루크 스카이워커는, 전통적인 미국의 신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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