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 남매의 고향의 향기
16. 오 남매의 고향의 향기
전날 늦게 자서 농원에 12시 넘어 도착했다.
둘째 처제가 본인 그림을 가져와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원에 꽃을 많이 가꿀 예정이니 꽃그림을 중앙에 포진하고 주변에 풍경화와 추상화와 드로잉 작품으로 포진했다. 물감을 들이부어 그린 새로운 화풍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 드로잉의 새로운 기법도 보았다. 뭔가 묘한 매력이 풍겨 나왔다. 20여 년을 드로잉으로 한 우물을 판 화가이다. 그림에 문외한인 우리는 잘 모르지만 주변에서는 제법 알아준다고 한다. 그림을 걸어 놓으니 오온 하우스가 아늑하고 화사해졌다.
아래 문갑 위에 오 남매의 사진들을 나란히 세워 놓으니 그야말로 오 남매의 고향집이 되었다. 빛바랜 사진들이지만 많은 사진이 소실되고 몇 장밖에 안 남은 사진을 막내 처제가 간직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옛날에 고부갈등으로 할머니가 화가 나서 사진을 전부 태워버렸다고 한다. 막내가 그걸 보고 자기 사진 있는 걸 빼돌려서 남게 된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 박장대소로 웃었고 막내의 기지를 감탄해했다.
그들의 고향집이 만들어진 기분이라 뿌듯했다. 언제나 그들은 이곳에서 고향의 향기를 느끼길 바란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찾을 수 있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고향이 되기를 바란다.
점심 준비하는 동안 처남과 같이 목련나무에 깜빡이 전구를 둘렀다. 나무 꼭대기까지 둘러 감으니 제법 시간이 걸렸다. 반짝이는 트리가 완성되었다. 곧 딸 내외가 들어와 1박 한다고 하니 우리 손자를 위해서 처남이 만드는 거라 했다. 우리 손자는 좋겠다. 정말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니 얼마나 복 많은 아이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사랑받으니 밝고 명랑하게 클 수밖에 없겠지. 우리 손자가 나중에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행복 전도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둘째 처제가 만든 꼬마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어 ‘벽돌 사랑 둘째 처제’를 위해 벽돌을 많이 실어왔다. 기와도 실어왔다. 벽돌이 있으면 뭐라도 궁리하고 만들어 내는 창작력이 발동되는 사람이다. 농원에 만들 게 없으면 탑이라도 쌓으라고 해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는 ‘불사랑’으로 화덕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혼자 불을 즐기고 있는데 아내와 둘째 처제가 곁으로 왔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모두들 흡족해하고 좋아하니 너무 좋다. 어려서부터 오 남매가 함께 똘똘 뭉쳐 살았으니 이렇게 다시 뭉칠 수도 있나 보다. 나도 언니와 결혼 후 너희들과 함께 10여 년은 살았으니 어색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그렇기도 하지만 형부가 권위의식을 내세우고 대우만 받으려고만 했으면 불가능했죠.”
난 정말 아내와 결혼 후 그들을 친형제 같이 생각했고 장인 장모님이 멀리 계시니 부모 대신 보호자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것이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아내의 인생이 내게 오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아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사랑법이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아내도 그렇게 살았기에 힘에 겨운 인생을 살았다.
정현종의 방문객을 컴퓨터에 붙여 논 이유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소중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더도 덜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둘째 처제도 그렇게 말한다. 욕심부리지 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표현인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