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웃도 변화한다.
농원에 오후 1시 다 되어 들어갔다. 큰 처제도 사위가 멀리 본가에 가서 딸네 집에서 애기 본다고 결석한다고 해서 픽업 안 해도 되니 늦장을 부리게 된다. 아내가 아침에 자는 습관이라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지만 겨울이라 할 일도 없으니까 더 늦장을 부리게 된다. 처남은 거기서 잤고 바지런한 둘째 처제는 벌써 들어와 있었다. 오누이가 내년에 예견되는 파리의 공습을 막고자 커튼을 걸어야겠다고 커튼 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파리가 깨끗한 방안 벽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점심에 처남이 준비한 오리볶음탕을 먹었다. 닭볶음탕은 많이 먹어봤지만 오리볶음탕은 처음 먹어봤다. 부드럽고 쫄깃하고 제법 맛이 좋았다. 농원 덕분에 주말마다 새로운 메뉴로 식사하는 즐거움이 계속된다. 서로가 맛있는 음식을 형제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들이 교차되어 모아지니 참 아름답다. 나이 들며 형제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같이 해 먹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날이 갈수록 소중함이 배가 된다.
할 일이 없어 뭐하나 나무나 주어올까 하고 있는데, 처남이 자바라 문 앞에 깔아 놓은 빨간 깔판이 삐뚤 하니 똑바로 자르자고 한다. 지난번에 내가 큰 것을 가위로 대충 반을 잘라 놓은 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거슬린다고 했다. 합판을 들고 와서 대고 반듯하게 면도칼로 자르고 나니 흡족해했다. “난 거슬리지 않는데 '이' 씨들은 참 거슬리는 것도 많다” 농담을 했다. 뭐든지 뚝딱거리고 잘 만들어 '이 가이버'라고 불러준다. 형제들이 일들을 잘하니 참 좋기는 하다. 나도 오늘 '김 가이버'로 불리었다. 벽시계 초침, 분침이 헷갈리게 돼 있어서 시간을 알기가 어려웠다. 둘째 처제가 퇴장하며 수정방법을 알려주어 시계 바늘을 잘라서 고쳐놨다.
초침,분침을 잘라서 고치니 보기 수월해졌다.
둘째 처제가 농막 주변 수로에 기왓장을 덮으란다. 수로관이 영 거슬렸단다. 난 둘째 처제의 도우미이니 잽싸게 기왓장으로 덮었다. 둘째 처제가 수로에 기왓장을 덮을 생각을 하고 처남한테 얘기했더니 처남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오누이는 닮아있다. 거슬리는 것도 많다. 하여튼 그래서 덮고 나니 깔끔했다. 예쁘다. 하나하나 이렇게 만들어가는 농원이다.
처남은 후문 발판을 만들었다. 데크 만들고 남은 자재를 잘라서 발판을 만들고 바깥벽 아래도 깔끔하게 마무리 작업을 끝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도 별로 없어 춥진 않았으나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이니 작업하다 보니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 추웠다. 난 작업을 도와주다가 굵은 소나무를 주워 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내가 소나무 주워오는 거 보고 둘째 처제는, 굵은 가지는 농막 앞에서 때라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더란다. 텔레파시가 통했단다. 작업 부스러기로 뒤꼍이 지저분해서 빗자루 찾아오니 처제는 벌써 쓸고 있었다. ‘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농담하며 웃었다. 일을 보면 바로 몸이 움직이는 성정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둘째 처제가 생각하면 난 벌써 몸이 움직이더란다.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아내와 둘째 처제는 고스톱 ‘맞고’를 쳤다. 자매가 오랜만에 고스톱을 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잔 거는 아내가 많이 이겼는데 한 방에 27점 낸 동생이 승 이리라.
이웃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오미자청을 가지고 방문했다. 지난번에 새해 인사한다고 선물을 건넸더니 그렇게 쑥스러워하시더니 오늘 선물을 준비해서 방문했다. 이게 주고받는 정인가 보다. 우리는 또 농원에서 재배 채취해서 만든 감국차와 막내 처제가 아프리카로 의료봉사 가서 구해온 꽃차를 선물했다. 이웃 아주머니는 방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두 자매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오미자청을 선물 받았으면 맛이나 보고 나올 걸 농막에 그냥 보관하고 나온 게 후회스러웠다. 그들도 5년 안에 집을 다시 짓고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살고 싶다고 했단다. 소나무를 팔 생각으로 재배했는데 정원으로 만들고 싶단다. 그들에게도 인생의 대변혁이 일어나는 거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정되는 순간은 언제든 찾아오는 법이다. 밤에 보니 그 집도 가로등도 하나 더 늘었다. 집 주변이 더 밝아졌다. 확실히 우리 농원을 보고 자극을 받긴 받았나 보다.
우리 농원은 전날 전봇대에 단 가로등이 밝게 내려 쏘아 주니 농막 주변이 대낮처럼 훤하다. 여름에는 벌레도 전봇대 위로 끌어모을 테고 데크 위에서 가족들의 만찬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전봇대에 가로등을 다니 주변이 대낮같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