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미디어 VS 아 프리오리
A priori ]
미디어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
by
칼럼니스트 펌프 김성호
Jun 19. 2025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43년 태생의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다.
특히 미디어, 테크놀로지, 군사 간의 역사적 관계를 중심으로
현대 문화를 비평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이다.
저서로 <축음기, 영화, 타자기>, <기록시스템 1800, 1900>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네이버도서
구글 이미지 -프리드리히 키틀러-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80년대
이후 뉴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으며,
기술의
자율성
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키틀러는
"`기술 미디어`야말로 `역사적 아 프리오리`로서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며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한다.
`아 프리오리`는
인식이나 개념이 후천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에 논리적으로 앞선 것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 개념은 `칸트`가 "
인식과 개념이 경험에 선행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는 의미로 사용한 어휘인데
이것을 `푸코`가
"인식과 개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선행되고, 경험을 가능케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하며 `역사적 아 프리오리`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이것을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로 발전시킨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만 보더라도 새로운 개념과 창작물의 `창조`는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과 창작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자신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주장하는
`창조는 편집이다.`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고로 창작자는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과 사물 등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여담 한 가지 더
`인식과 개념`이 `경험`에 선행하든 `경험`이 `인식과 개념`에 선행하든
무엇이 선행하는지 밝히려는 시도가 학자 입장에서는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과
그 존재가 무엇인지 `개념`을 정하는 것과
그 존재를 사용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순서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식하고 개념` 짓고 `경험`하든
`경험`하고 `인식하고 개념` 짓든 순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AI 가 등장했는데 AI 를 `인식하고 개념` 지은 후 `경험`하는 것이 먼저인지
AI 를 `경험`한 후 `인식하고 개념` 지우는 것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와 같은 허황된 질문일 것이다.
AI 가 등장했다는 말만 듣고 그것을 인식하고 개념 지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듣고 알고 있는 것뿐이다.
직접 경험하면서 `AI 가 이런 거구나`며 알아가는 과정이
인식이고 개념 짓는 것이다.
요만큼 AI 를 알았다고 인식한 것일까?
사용하면서 `이런 기능이 있네`라며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식이 생기게 될 것이므로 `인식과 개념 지움`과 `경험`은
동시에 진행된다고 여겨도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라 지금 현재 강력한 AI 가 등장했다는 것이고
이것을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것이기에 올바르게 다루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인식과 개념 그리고 경험의 순서보다 새로운 창작물인 강력한 AI 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현명한 사고일 것이다.
키틀러가 `푸코`의 `역사적 아 프리오리` 라는 개념에서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하는데
이 `기술 미디어론`에는 `아 프리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므로
기술을 `인식하고 개념` 지은 후 기술을 `경험`하는 것으로 키틀러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
기술이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1900년 무렵에 탄생한 `축음기, 영화, 타자기`와 같은 기술적 미디어를 통해
이전에는 없던 인식이 출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축음기는 귀로 붙들 수 없던 소리를 보존하고 재생할 수 있게 해 주고
영화는 고속 촬영 기술을 활용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타자기는 그 당시에 남자들만 글쓰기 하던 것을 여자들에게까지 확대해 주기 때문에
기술 미디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론의 창시자인 `매클루언`이
"미디어는 메시지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고 말하며
"기술적인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이므로 주체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은 1911년 태생의 캐나다의 영문학자이고 문명 비평가이다.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미디어론`을 주장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구글 이미지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말하자면 `기술 미디어`의 메시지는
축음기는 소리를 저장하는 기술이므로 `축음기의 메시지`는 지금 내가 한 말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다시 재생되어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영화는 고도의 촬영 기술이므로 `영화의 메시지`는 어떤 찰나의 순간에
내가 한 행동을 잡아내어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고
타자기는 생각을 글로 저장하는 것이므로 `타자기의 메시지`는
과거에 내가 적은 글로 인해 현재나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 미디어`를 보고 그 `메시지`를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술 미디어를 통해 던져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그 `메시지`를 인간 스스로 주체적으로 탐구하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조작될 수 있는 사태가 일어날 것"
이라고 키틀러가 주장하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러한 키틀러의 주장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가 인간을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지금 눈앞의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펼쳐져 왔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펼쳐갈 세상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역사는 선한 것만 생존한 것이 아니고 악한 것만 생존해 온 것도 아니다.
역사는 그저 이렇게 흘러온 것일 뿐이다.
역사는 선하고 악하다는 것은 없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우리가
`기술 미디어`가 던지는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에게 선한 세상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흘러갈 세상이 선하든 악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에게만 선과 악이 중요할 뿐이다.
과연
AI 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할까?
keyword
기술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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