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미디어 VS 아 프리오리
A priori ]

미디어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43년 태생의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다.

특히 미디어, 테크놀로지, 군사 간의 역사적 관계를 중심으로

현대 문화를 비평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이다.

저서로 <축음기, 영화, 타자기>, <기록시스템 1800, 1900>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네이버도서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616%EF%BC%BF040101%EF%BC%BFGoogle.jpg?type=w773 구글 이미지 -프리드리히 키틀러-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80년대 이후 뉴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으며,

기술의 자율성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키틀러는


"`기술 미디어`야말로 `역사적 아 프리오리`로서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며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한다.


`아 프리오리`는 인식이나 개념이 후천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에 논리적으로 앞선 것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 개념은 `칸트`가 "인식과 개념이 경험에 선행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는 의미로 사용한 어휘인데


이것을 `푸코`가


"인식과 개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선행되고, 경험을 가능케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하며 `역사적 아 프리오리`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이것을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로 발전시킨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만 보더라도 새로운 개념과 창작물의 `창조`는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과 창작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자신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주장하는

`창조는 편집이다.`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고로 창작자는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과 사물 등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여담 한 가지 더

`인식과 개념`이 `경험`에 선행하든 `경험`이 `인식과 개념`에 선행하든

무엇이 선행하는지 밝히려는 시도가 학자 입장에서는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과

그 존재가 무엇인지 `개념`을 정하는 것과

그 존재를 사용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순서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식하고 개념` 짓고 `경험`하든

`경험`하고 `인식하고 개념` 짓든 순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AI 가 등장했는데 AI 를 `인식하고 개념` 지은 후 `경험`하는 것이 먼저인지

AI 를 `경험`한 후 `인식하고 개념` 지우는 것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와 같은 허황된 질문일 것이다.


AI 가 등장했다는 말만 듣고 그것을 인식하고 개념 지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듣고 알고 있는 것뿐이다.


직접 경험하면서 `AI 가 이런 거구나`며 알아가는 과정이

인식이고 개념 짓는 것이다.

요만큼 AI 를 알았다고 인식한 것일까?

사용하면서 `이런 기능이 있네`라며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식이 생기게 될 것이므로 `인식과 개념 지움`과 `경험`은

동시에 진행된다고 여겨도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라 지금 현재 강력한 AI 가 등장했다는 것이고

이것을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것이기에 올바르게 다루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인식과 개념 그리고 경험의 순서보다 새로운 창작물인 강력한 AI 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현명한 사고일 것이다.


키틀러가 `푸코`의 `역사적 아 프리오리` 라는 개념에서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하는데

이 `기술 미디어론`에는 `아 프리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므로

기술을 `인식하고 개념` 지은 후 기술을 `경험`하는 것으로 키틀러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

기술이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1900년 무렵에 탄생한 `축음기, 영화, 타자기`와 같은 기술적 미디어를 통해

이전에는 없던 인식이 출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축음기는 귀로 붙들 수 없던 소리를 보존하고 재생할 수 있게 해 주고

영화는 고속 촬영 기술을 활용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타자기는 그 당시에 남자들만 글쓰기 하던 것을 여자들에게까지 확대해 주기 때문에

기술 미디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론의 창시자인 `매클루언`이 "미디어는 메시지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고 말하며


"기술적인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이므로 주체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은 1911년 태생의 캐나다의 영문학자이고 문명 비평가이다.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미디어론`을 주장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616%EF%BC%BF040213%EF%BC%BFGoogle.jpg?type=w773 구글 이미지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말하자면 `기술 미디어`의 메시지는

축음기는 소리를 저장하는 기술이므로 `축음기의 메시지`는 지금 내가 한 말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다시 재생되어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영화는 고도의 촬영 기술이므로 `영화의 메시지`는 어떤 찰나의 순간에

내가 한 행동을 잡아내어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고


타자기는 생각을 글로 저장하는 것이므로 `타자기의 메시지`는

과거에 내가 적은 글로 인해 현재나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나에게 선이든 악이든

영향을 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 미디어`를 보고 그 `메시지`를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술 미디어를 통해 던져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그 `메시지`를 인간 스스로 주체적으로 탐구하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조작될 수 있는 사태가 일어날 것"


이라고 키틀러가 주장하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러한 키틀러의 주장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키틀러가 `기술 미디어가 인간을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지금 눈앞의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펼쳐져 왔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펼쳐갈 세상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역사는 선한 것만 생존한 것이 아니고 악한 것만 생존해 온 것도 아니다.

역사는 그저 이렇게 흘러온 것일 뿐이다.

역사는 선하고 악하다는 것은 없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우리가 `기술 미디어`가 던지는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에게 선한 세상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흘러갈 세상이 선하든 악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에게만 선과 악이 중요할 뿐이다.


과연 AI 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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