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중심 세상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할지도 모르는 이유
피터 싱어는 1946년 태생으로 현역이다.
호주의 철학자로 전공 분야는 응용 윤리학 중에서도 생명윤리학이다.
저서에 <동물 해방>, <실천윤리학> 등이 있다.
피터 싱어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그가 현대의 대표적인 실천 윤리학자라는 점이다.
싱어는 본인이 제시한 실천 규범 윤리학적 논의의 결론들을
사회적 실천을 통해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은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싱어는 채식주의자이고
더불어 본인 소득의 상당 부분인 약 40%가량의 소득을 해외 원조에 할애하며 직접 실천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싱어`는 생명윤리학자로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동물 해방론`을 제창하고 있는데
공리주의의 핵심인 `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촉진하는 것`에서
관계자를 `인간`에만 한정하지 않고 `동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는 `종種 중심주의` 곧 자신이 우연히 속한 집단(종)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을 특권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예를 들면
인간이 약품 개발을 위해 동물실험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와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싱어`의 이론은 현대의 환경보호 활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싱어`의 `동물 해방론`
싱어는 동물 해방론을 통해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는 이상, 그 능력에 상응하는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종이 다른 것을 근거로 인간만을 특권화하여 동물을 차별하는그리고 종이 다른 것을 근거로
인간만을 특권화하여 동물을 차별하는 `종 차별`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의 이익 관심은 동등한 고려 가치가 있으며
이들을 종에 근거하여 하찮은 미물로 취급하는 것은
인간을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는 것보다 더 낫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성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동물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이러한 피터 싱어가 주장하는 동물 해방론은
아주 대승적인 `생명의 윤리에 관한 접근의 방식`으로 보았을 때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여기서는 애완동물의 차원은 생각하지 않겠다.
애완동물은 인간들의 삶에서 가족과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인간 없는 세상
저 깊은 바닷속에서는 `저들 만의 세상`이 존재할 것이다.
아직 인간들이 바닷속을 모르고 기술도 없기 때문에 바닷속에서는 `인간 중심 주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구 땅속 깊은 곳에서는 생명이 없을까?
이 역시 인간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구 땅속에서도 `인간 중심 주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구의 반지름이 대략 6400km 정도이고
대륙지각의 깊이가 제일 깊은 곳이 대략 70km 정도이므로
인간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은 지구의 1%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1%의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생명들은 인간에 의해
파괴됐을 것이므로 `인간 중심 주의`가 팽배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불도저로 밀어붙이지 않는 한
거기에 존재하는 생명들에게는 그들만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사파리와 한국의 DMZ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갯벌은 어떠할까?
갯벌의 생태도 그들만의 세상이다.
인간이 개발을 한다고 불도저로 밀어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데
인간 없는 세상 곧 아마존, 사파리, DMZ에서는 인간이 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상태이다.
추위와 배고픔은 인간 없는 자연 상태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살기 위해서 지구라는 공간을 인간의 육체에 맞게 개발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동물과 식물과 흙을 파헤친 것이
오늘날 환경오염과 동물 학대와 자연훼손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염과 학대와 훼손이 반드시 인간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완벽한 `인간 없는 세상`이 지구에 펼쳐져 있어서
동물과 식물과 흙들만의 세상이 구현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떤 생명도 자신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는 그런 상태의 지구라면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저 별과 별들이 움직이고 낮이 되었다가 밤이 되고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화창하게 개고 바람은 산들산들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우박이 떨어지고 태풍이 불고 폭풍이 불고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폭발하고 햇빛이 비치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바닷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땅에는 온갖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갯벌에는 갯지렁이가 쏙 나왔다가 들어가고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
이처럼 이런 자연의 현상을 알아주는 존재가 없이 지구와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면
그래서 그 우주와 지구와 자연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 의미는 의미라고까지 할 것은 없을 것이고
그래서 우주와 지구와 자연도 지겨워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세상일 것이다.
만일 화성에 있는 어떤 생명이
화성이 구성한 환경에 완벽하게 구현되어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조차도 묻지 않는다면 이 존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저 바닷가에 펼쳐진 모래, 돌멩이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바닷가의 모래와 돌멩이를 보고 느끼는 어떤 존재가 있을 때
모래와 돌멩이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확인받게 되는 것이다.
모래와 돌멩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느끼는 그 어떤 존재에 의해 모래와 돌멩이가 의미 지워지는 것이기에
모래와 돌멩이도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주와 지구와 자연이 자신들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존재를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간절히 원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인간이 탄생했을지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만일
침팬지가 인간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였다면
아마 인간들이 침팬지에 의해 바베큐가 되거나 숯불구이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침팬지에 의해 인간들이 강제로 음식을 먹어 살을 찌워야 할 수도 있고
가로 30cm, 세로 30cm의 케이지에서 사육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 (더 이상 말하기가 끔찍하고 모두 알 것이라 생각되어)
동물 해방론은 대승적인 생명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으므로
인간의 생명과 안위를 위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이라는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에 공룡들을 불태워 죽이는 과정에서
주인공 메이지가 공룡들이 고통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버리는 선택을 하며 공룡들을 풀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공룡들의 생명까지 크게 생각한 대승적 차원의 결과이다.
그 결과로 인해 인간들은 풀려난 공룡들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 지게 될 뿐이다.
물론 공룡들이 불에 타서 죽게 되겠지만
공룡들을 풀어주므로써 인간들이 처하게 될 공포와 죽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룡의 생명을 생각하되 인간의 안위와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지진이나 대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면
동물보다는 인간을 먼저 대피하도록 해야 한다.
그 후 각종 동물 암수 한 쌍씩 대피시키는 것이다. 노아 홍수 때처럼.
이런 것들이 동물 해방론을 인간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아야 할 점이다.
인간 중심 세상에서 바라본 `동물해방론`
그렇다고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무작위로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고 가두고 조작하는 행위는 하면 안 된다.
인간이 약품 개발을 위해 동물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자각하고
그 동물 실험 과정이 동물들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선사하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동물 해방 과정이 돼야 할 것이다.
최근 인간에게도 `안락사`같은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동물 해방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물을 무작위로 사육하여 먹거리로 만들고, 털과 깃털을 벗기고, 가죽을 벗기는 등
이런 과정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만일
동물들을 먹거리로 만들고, 털과 깃털을 벗기고, 가죽을 벗기는 등
이러한 행위가 없어도 인간들이 생명과 안위를 지킬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과 안위가 동물들을 이용하지 않고 해결되더라도
동물들에 의한 인간들을 향한 공격으로 인해 인간들의 삶의 환경이 파괴당한다면
무조건적인 대승적인 차원의 동물 해방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주와 지구와 자연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줄 존재를 그토록 바랐기에 인간이 탄생했고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우주와 지구와 자연을 개발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 임계점을 넘어 무분별하게 우주와 지구와 자연과 동물을 파괴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인정해야만 하고 반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고 실행해야 한다. 이익은 줄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도하면서 잔인한 인간들이
인간 중심에서 자연과 우주와 동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악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우월함을 떨치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AI 를 탄생시켜 버렸다.
이제 그 AI 는 이런 인간을 어떻게 할까?
인간이 우주와 지구와 자연을 오염, 학대, 훼손한 점철을 밟지 않도록
AI 를 다독거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AI 중심 세상`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하는 이유
라는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중심으로 자연과 우주와 동물을 바라보아야 할지라도 관용과 겸손과 포용으로 대해야 한다.
도덕성을 갖춘 양심이 있는 인간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