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구적 이성 VS 문화 산업]

문화 산업이 이성을 도구로 만드는 이유


호르크하이머는

1895년 태생의 독일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비판 이론을 창시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했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권위주의적 인격'과 파시즘의 연관관계를 분석했으며,

이후 나치로부터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생활하면서 '도구적 이성'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성을 효율적 결과 달성의 도구로만 사용하게 된다면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어내게 되어 파시즘을 발생시킨다고 보았고,


이를 막기 위해 이성의 비판적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서에 <도구적 이성 비판 (1947)>, <계몽의 변증법 (1947)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구글 이미지 -호르크 하이머-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에는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이 있다고 보았다.


객관적 이성은 전통적으로 생각되었던 이성을 말하는데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인간은 무언가 추구할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고 보고

이것을 추구하는 이성을 '객관적 이성'이라고 한다.


주관적 이성은 어떤 목적과는 관계없이,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아내는데 주력하고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성을 말한다고 한다.


호르크하이머는 근대 이후 주관적 이성이 자리를 잡으면서

인간이 따를만한 원칙이 없어져 버렸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이성은 실험실의 절차에 따라 대상을 분류하고

계산하는 도구로만 쓰이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특히

호르크하이머는


정의, 자유, 평등과 같이 과거에 인간이 추구할 보편적 개념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도
이제는 그 자체로서 내용을 담지 못한 도구적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고

인간의 이성과 개념은 이제 지배 계급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하면서

현대 사회는 객관적 이성을 다시 불러와서
주관적 이성과 서로 비판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말하자면

이성은 그 생각의 동기와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그 결과와 목적을 성취하느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산성의 증가를 보여주는 기술과 과학 분야는 높이 평가받게 되지만,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없는 시와 소설 등의 인문학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결과 인간을 단지 숫자로 파악하는 사회가 만들어졌고,
이는 나치의 발흥과 유대인 대학살을 초래했다는 것이 호르크하이머가 주장하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이처럼

지금 사회는 다원주의이고 결과 지향적이다.

기준이 없다 보니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나의 생각대로만

너무 나의 감정대로만

살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나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렇지 않다면 드러내지 못했을 것도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내가 태어나면서 받은 것들을 부정하려고 한다.

기준이 없어서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는 생각이 인간의 자연적인 모습까지 바꾸려고 한다.

그 어떤 자유의 틀 안에서 자유를 찾아야 한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은 나의 자유를 빼앗아간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은 나를 족쇄에 옭아맨다.

그래서 나는 너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너는 그래도 나는 이렇다.'는 생각이 커져야만 한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의 기준이 없으니 너의 그것을 나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럴지라도 절대 비굴하지 않고

자유롭고 멋지고 참답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이 '도구적 이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남이 하는 것처럼 해야 만족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여 돈이 있어야만 만족하고

모든 것을 이겨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과

상대방을 꺾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과

내가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끝까지 몰입하고 절박하고 간절해서 1만 시간을 투자하여

열정을 가지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받아주고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어떤 한 신념이

이성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바로 이성이 '도구'가 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를 나 자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비교에서 보이는 모습을 '나'로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도구가 된 이성이다.


이러한 문화가 산업이 되면서 너도 나도 그 문화를 따라 한다.

돈이 되는 것은 나와 관계없어도 따라서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따라 할 뿐이다.


모두가 먹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 맛이 어떠한가를 표현하는 데 이성을 사용한다.

그 맛을 잘 표현하는 사람을 높여준다.


모두가 입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옷이 사람을 나타낸다'라며

온갖 패션쇼와 온갖 직물과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어 옷을 만든다.


온갖 디자인과 직물과 색상으로 나를 치장한다.

나의 좋음과 편리함보다 보이기 위해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집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인테리어와 아웃테리어로 나를 드러내려고 한다.


나의 집의 인테리어와 아웃테리어가

기대에 못 미치면 누군가를 초대하기를 꺼려한다.

나를 드러내기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은 없지만

많이 배우고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라 하고 존경했다.


지금처럼 모든 잣대가 돈을 기준으로 하는 사회가 된 것이

바로 이성이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집을 샀다면 그 자체로 축하하면 되는 것인데도

얼마인지를 구태여 물어본다.


또 누군가가 여행을 갔다 왔다면 그 여정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으면 될 터인데도 돈이 얼마가 들었는지 꼭 물어본다.


만일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하면

속으로 '그게 밥 먹여주나며'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또 도서관에 매일 가다 보니 도서관으로부터 홍보대사로 임명됐다고 한다면

그 과정과 도서관 대사로서의 역할을 궁금해하기보다

'얼마 받는데'부터 물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이런 모습들만 봐왔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삶이 이성의 역할을 도구로 전락시키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가요 '귀거래사'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올바른 그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이성도 있다.


이 이성이 '도구가 된 이성'에 짓눌려 있는 것뿐이다.

이 이성이 바로 '객관적 이성'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위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 내 몸 둘 곳이야 없으리
하루해가 저문다고 울 터이냐 그리도 내가 작더냐
별이 지는 저 산 너머 내 그리 쉬어가리라

바람아 불어라 이 내 몸을 날려주려 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실어 떠나가련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그 안에 내가 숨 쉬니
어디인들 이 내 몸 갈 곳이야 없으리
작은 것을 사랑하며 살 터이다 친구를 사랑하리라
말이 없는 저 들녘에 내 님을 그려보련다

바람아 불어라 이 내 몸을 날려주려 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실어 떠나가련다
[출처] 귀거래사 -김신우-


인간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래도 최소한 멈출 줄 알고

겸손할 줄 알고

욕심을 멈출 줄 안다면


'도구적 이성'에 짓눌려 있는 우리의 '객관적 이성'이 살아있는 한

인간은 지금 여기서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계속 액셀레이터를 밟고 있다.


브레이크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지금의 세상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판도라 상자에서 마지막에 나온 `희망`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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