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게모니 VS 하모니]

`헤게모니`의 대항자가 `하모니`인 이유


임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의 역사와 사회 전체를 '단일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세계체제론>을 제창, 확립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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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이 주장하고 있는 <세계체제론>은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보상을 뜻하는 '작은 체계'이다.

두 번째는 `세계 = 제국`처럼 중앙권력이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한 `세계 = 경제`라는 체제이다.
경제적으로만 연결된 체제인데 약 500년 이상 계속된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러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세계를 단일한 경제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이 시스템 내에서 국가 간의 불평등과 변화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그는 세계 체제를 중심, 반주변, 주변으로 나누어 분석하며,
중심 국가는 핵심 산업과 금융을 장악하고 부를 축적하며,
주변 국가는 원자재를 제공하고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나무위키


이러한 `중심, 반주변, 주변`이라는 체제는 분업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데

중심에 주변이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지역 간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고 월러스틴은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 경제`라는 체제가 불균형한 상태로 체제를 형성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는 것이다.


여기서 중심 국가는 한 나라가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비해 우위에 있는 국가를 말하는데
특히 이러할 때 '헤게모니'를 획득했다고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헤게모니`란 우리말로는 `패권`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헤게모니`는


사전적인 뜻은 어떠한 일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 또는 권한을 말한다.
현재는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출처] 나무위키


`패권`은


집단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이고
어느 한 지배 집단이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정치, 경제, 사상 또는 문화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출처] 위키백과


역사적으로


17세기는 `네덜란드`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


이 헤게모니를 획득하였다.


월러스틴은

현재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지금 미국이 달러의 강세를 위해 트럼프가 취하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미국이 패권, 곧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2025년 이후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가 없다.

워낙 세상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현상만을 보면서 약간의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과 가상화폐가 새롭게 탄생한 이 시기에 이를 활용한 헤게모니

곧 패권을 차지할 그 무엇이 탄생할 것이다.


AI 기술과 가상화폐의 높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소유한 국가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에너지를 만드는 국가가 헤게모니를 획득할 것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

`대규모 정전으로 인프라가 마비`되어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헤게모니는 전체가 또는 국가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도전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지금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서 다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다른 패권국으로부터 이용당하고 멸시받는 국가가 되지 않도록

국내적으로는 합심하여 뭉치고 국제적으로는 큰소리칠 수 있는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헤게모니가 탄생하였을 때 `개인`이 어떻게 취급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과연 `'개인`으로서의 정의가 지금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국가별로는 인구 절벽일지언정 전 지구적으로는 인구가 포화상태이다.


그리고

자원은 한계에 이르러 고갈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석유와 석탄이 언제까지 에너지를 창출할지도 모르고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를 찾아서 연구, 개발하고 있지만

상용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고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사용하기도 싶지가 않다.


`한 개인`을 아우르고 있는 세상이

과연 `한 개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분위기 또는 환경을 언제까지 구비해 줄지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지금 현재 우리는 그래도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든 `정의`를 찾고는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미래도 과연 `정의`를 찾을까 싶을 정도로 `이익`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인구는 많고, 자원은 제한적인 상태에서

지금도 `정의`가 과연 인간의 목숨에 영향을 줄 것인지 의문스러운데

미래는 더 `정의`를 찾는 손길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우리가 지금 `미디어`를 통해 장밋빛 환상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밋빛 환상보다 더 큰 위험이 있는데도 우리는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디어로 `한 개인`을 길들이고 있지는 않을까?

패권을 차지, 곧 헤게모니를 가진 어떤 국가가 국가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할까?


자신들을 찬성하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은 Jock Young이 주장하는 것처럼 `배제`할 것이다.


이러한 전 지구적인 환경 속에서

어떤 새로운 헤게모니를 획득한 국가가 나타났을 때 한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장밋빛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 `개인`은 어떻게 살며 어떻게 권리를 누려야 할까?
`정의`는 한 개인에게 힘이 되어줄까?


한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하려면 `편리`와 `재미`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항상 행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담금질`하는데 필요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 개인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정의`가 `한 개인`에게 힘이 되지 않는 세상은 전쟁하고 있는 세상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우열관계를 따지지 않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나만 생각하지 않고

친구의 좋음을 함께 기뻐해 주고

친구의 슬픔을 함께 슬퍼해 주고

서로서로가 양보하고 받아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모니` 곧 `조화`를 유지해야 사이가 좋아지고 유지된다는 말이다.


`하모니` 또는 `조화`가 없으면 사이가 좋을 수가 없으므로 강압적으로 또는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헤게모니` 곧 `패권`의 대항자는 `하모니` 즉 `조화`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도 이렇게 하고

기업도 이렇게 하고

가진 자도 이렇게 하고

......


그러면 우리에게 나타난 또는 나타나게 될 위험이 없어지고 서로서로가 잘 살게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익을 좀 줄이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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