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지의 베일 VS 정의]

1971년에 지적한 것이 2025년에도 변함이 없는 이유


존 롤스는

1921년 출생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정의론(1971년)』의 저자로,

40년 동안 정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을 연구하였다.

[출처] 나무위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513%EF%BC%BF192045%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존 롤스-


존 롤스가 말하는 자유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 자유'에 관한 것으로

롤스는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원칙은 '차등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롤스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라면

그러한 사회는 약자에게 유리해질 수 있게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불평등의 시정을 촉구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러한 원칙을 위해 롤스는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는데

'무지의 베일'을 통해서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무지의 베일'이란


자신과 타인의 개인 정보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즉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인지, 자산과 능력은 어떠한지와 같은

정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그러한 조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생각하자'라고

존 롤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 뒤에서

자신의 소득이 최하위층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에

롤스는 공공 정책은 <최소 극대화의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즉 공공 정책의 목표는 사회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삼는 '공리주의'에 비해

최빈층의 효용 극대화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소득 재분배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최소 극대화의 원칙>도 '공리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소득을 균등하게 만드는

소득 재분배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면 일을 하든 안 하든

모두가 똑같은 소득을 얻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려는 유인이 줄어들어 사회 전체의 효용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시사경제용어사전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1971년에 지적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때 지적한 것이 옳고 그른지 차치하더라도

54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고민하고 있다.

그저 고민만 하고 있다.

결국 바뀐 것이 없다는 말이다.


왜 바뀌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 말만 일삼는 권력자들과 최상위 가진 자들의 양심에 의한

포용과 베풂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로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지만 2025년 현재까지

제대로 공론화되거나 시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권력자들과 최상위 가진 자들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그것을 획득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와주었던 주변 사람들보다 권력자와 최상위 가진 자들이 더 가져갔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어려운 일을 추진했거나 되지도 않을 계약을 따냈다는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권력자들과 최상위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부를 더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맞다.

추진하지 않았고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면

절대로 이루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추진하고 힘들게 얻은 계약을 주변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여기에 함정이 있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들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것을 가지게 되는 그 시점에서

분배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그 수익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기 시작하면서

분배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혜택을 받는 자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양심에 비추어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고


일부의 부도덕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으로 혜택을 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혜택을 받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착오로 인해

또는 부정적으로 얻어 간 사람 때문에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혜택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은 물질 만능과 돈을 중심으로

옆 사람을 눌러야 내가 산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다른 정의론이 나와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식부터 바꾸는 작업을 해야만

조금이라도 공정과 분배와 정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자연 vs 인간](2)(3)(4)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금 기성세대에게는 혜택을 더 부여하지 말고

기성세대는 지금 제도대로 흘러가고 물론 많은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기성세대들이 희생을 감수를 하는 것이

젊은 청년인 우리 자녀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물려주는 길일 것이다.


젊은 청년들, 곧 우리 자녀들부터는 모든 석학들이 주장하고 있는 '비법'들을

생각만 하고 분석하고 따지지 말고 직접 행하면서 수정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https://blog.naver.com/bbulii/223816130332

https://blog.naver.com/bbulii/223817395155

https://blog.naver.com/bbulii/22382073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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