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 아닌 `내로남로`이어야 하는 이유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태생의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저서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추구하였다.
이처럼 칸트는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말하는데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고 한다.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제시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적인 가언명령假言命令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의무로서 명령인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든 따라야만 하는 정언 명령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첫째 명령은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 하라”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해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생각해서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명령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 하라”이다.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반대하면서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론적인 인간관`이란
인간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는 이론이다.
칸트는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인간에게는 `도덕 법칙`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고 말하면서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출처] 위키백과 -임마누엘 칸트-
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만 따르므로 `자연론적인 동물관`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에만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이 있어서 동물과 구별되며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도덕 곧 `도덕법칙`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도덕을 배제한 채 과학기술과 자본주의가
이익만을 위해서 달려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이러한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이에 따른 부작용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과제는
공자의 `인의예지신`이면서 칸트의 `정언명령`일 것이다.
바로 `정언명령`을 쉽게 말하면
내가 되면 남도 되는 것이고
내가 안 되면 남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내로남불`이 아닌 `내로남로`의 자세로 임한다면
부작용들이 그나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칸트가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처럼
결과가 좋아서 대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과가 나쁘더라도 대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명이 경쟁을 하면 1등이 있고 10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일 10등이 노력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여 10등이라는 결과를 받았다면
당연히 대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노력했다면
1등이든 10등이든 '노력했다`는 의미로서는 대등하게 대우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한다면 결과를 생각지 않게 되어 능력은 발휘되지 않는 역효과를 낼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로서의 대우는 지금처럼 하되
상금이 너무 차이가 나지 않게 조절하면서
1,2,3등만 초대하고 인터뷰하는 지금과 같은 관행을
4등부터 10등까지도 초대하여 인터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도덕법칙을 자본주의에 적용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소득 불균형`일 것이다.
소득 불균형은
이익이 창출된 그 처음부터 창출된 이익을 분배할 때
너무 차이가 나게 분배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득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이익을 창출하게 된 것은
자본가가 투자한 돈만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기관이 투자한 돈과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돈과 수많은 직원들의 희생과 노력 등으로 이룬 것이다.
적어도 자본가만의 돈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와 직원들이 이익을 분배하는 방법부터
다시 논의해야만 소득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도덕법칙을 자본주의에 접목하여 `도덕 자본주의`를 정립시키는 시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참고 글]
https://brunch.co.kr/@52168600bfee4e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