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그레트헨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이유
괴테는
1749년 태생의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저서로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괴테-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에 대한 사랑은 무엇일까?
육체적인 사랑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사랑일까?
육체적인 사랑은 속되고
정신적인 사랑은 성숙한 것인가?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고 젊음을 얻는다.
그런데 젊음의 역동적인 이끌림으로 인해 만나게 된 그레트헨과의 관계 속에서
그레트헨의 어머니와 오빠를 살해하게 된다.
그레트헨이 감옥에 가게 되고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능력으로 그레트헨을 탈출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그레트헨은 거절한다.
그레트헨 자신의 죗값을 치르겠다고 울부짖으며 기도한다.
그 순간 하늘의 천사가 죄 사함을 받았다며 그레트헨을 구원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괴테가 연출한 아주 특별한 경우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여인과 만나는데 아니 사랑하는데
방해꾼이 있어서 그 방해꾼을 살해하기로 공모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이고 사건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기 위해
로켓을 발사했는데 그 로켓이 다시 돌아와서 그 처음의 발사대에 안착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아니면 뉴스에 나오는 어떤 특수한 사건 사고와 같은 것처럼
아주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우리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다르다.
그냥 그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야만
누군가에게 각인될 수 있다고 느끼는 인간들의 허상이고 욕심일 뿐이다.
그 누군가에게 각인이 된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 그래서 나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높아지고 각인되면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거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으로 나를 성공시키는 경우는
지극히 소수의 삶이지 일반 대중들의 삶은 아니라는 말이다.
보통 사람은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삶'이라는 그냥 그렇고 그런 삶을 사는 것뿐이다.
특수한 사람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염상진같이 어떤 이념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특별하게 다르게 사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특수한 사람에 의해서 지금 삶이 풍요롭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풍요로운 삶이 어느 한쪽에 기울어 있는 것을 보면 딱히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공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사람들은 파우스트이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고
나를 각인시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 몸부림은
파우스트가 저지른 살인처럼
남을 아니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보도록 하는 지독하게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늘 일어나고 있다.
토지 2부 1권의 한 대목이다.
거미줄에서는 바야흐로 무서운 사투가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날벌레와 그 날벌레보다 작은 거미 한 마리와의 싸움이었다.
길상은 물 묻은 손을 뻗쳐 거미줄을 확 젖혔다.
한데 달아날 줄 알았던 거미는 몸을 움츠리고 가사상태를 위장하면서
다리 두 개를 뻗쳐 벌레를 잡고 놓질 않는다.
순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증오심에서 길상은 거미를 문들어 죽이고 말았다.
날벌레는 높이높이 비상하여 가버렸다.
그러나 길상의 마음은 개운치가 않았다.
신변에 위기를 느꼈음에도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미는
그만큼 기아선상에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굶주린 것에게서 먹이를 빼앗고 죽이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처사였더란 말인가.
[출처] 토지 2부 1권 -박경리-
이 상황을 우리 인간들의 삶으로 바꾸어 생각한다면
거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이고, 날벌레는 `인간`이다.
그리고 길상은 각인시키려고 하는 `나의 마음`이다.
거미인 `악마`가
날벌레인 `인간`을 부추겨 죄를 짓도록 만들려는 계략을
오히려 날벌레인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 자신을 죽이려는
거미 곧 `악마`를
길상인 `나의 마음`이 거미인 `악마`를 없애버림으로써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레트헨이 감옥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있을 때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는 것은 그레트헨에게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도
그레트헨이 거절한 이유는
적어도 살인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은 그레트헨을 신은 구원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삶으로 보면 구원하면 안 된다.
왜? 살인한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신이 실제로도 그레트헨을 구원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그레트헨을 구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이 신념은 무엇인가?
아마도
내가 죄를 저지르더라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괴테가 하늘이 그레트헨을 구원하도록 결론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행한 행위는 남아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