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사람

by 농부사랑

긍정의 사람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특히 긍정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려운 여건도 꿋꿋하게 헤쳐나가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던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자코미누스>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주인공 자코미누스는 어렸을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자코미누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준 인물은 아내 루시입니다. 루시는 자코미누스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훗날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삶의 여러 고비를 지나며 때로는 외롭고 우울하였지만, 아내 루시와의 만남과 사랑을 통해 긍정적인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자코미누스는 자신이 별로 크지 않고, 빠르지 않고, 높이 뛰어오르지 못해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긍정의 사람, 아내 루시와 함께 하였기에 여러 약점이 있음에도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냈고,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때도 있었지만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져 주위에 선한 영향력,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25년을 함께 살았고 14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입니다. 아내와는 첫 직장에서 2년 남짓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각자 다른 직장으로 옮긴 후에야 지인의 소개로 다시 만났습니다. 그 무렵 나는 가난 때문에 실연당하고 자존감이 바닥나 있었습니다. 가난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라며, 괴로워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실연을 당한 후 소개팅을 많이 하였는데,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콜중독, 불면증, 심한 두통으로 중병을 앓는 환자 같았기에 두 번 다시 만나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욱 패배의식과 가난에 대한 운명주의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를 소개받고 처음 만난 날, 솔직하게 저의 연약함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에 함께 근무할 때 혹시 좋게 보았다면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고.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괜찮은 척했던 거라고. 물론 가난 때문에 실연당한 것도, 방 한 칸 얻을 전세금도 없고 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도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고 ….


하지만 아내는 그런 건 문제 되지 않고 신앙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진 것도 이제 겨우 한 달 지났다고 하였지요. 소개받고 3일간 매일 만나서 똑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니까, 아내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싫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하여, 소개팅하기 바로 전날 우리 둘을 모두 아는 옛직장 동료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다음날 아내랑 소개팅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며 말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성경책을 끼고 살았고 퇴근 후에는 교회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나는 성경이나 교회와는 등진 반(反)그리스도인, 안티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한 달 전에 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친구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습니다. ‘아무나’랑 결혼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아내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 들었고, 우리는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옛 직장에서 우리의 결혼은 당시(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 잘못 알려진 김일성 사망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1986년 말,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90년대 전후 서울 전셋값이 치솟아 변두리로 또다시 지하 방으로 이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하 방에서 살 때는 아이들이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환기가 안 되는 지하방의 취약점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15년 만에 융자를 받아 겨우 내 집을 마련하여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참으로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저를 만나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잘 헤쳐 왔을 뿐만 아니라, 자존감이 낮고 신앙의 기초도 없는 저에게 ‘정리를 잘한다. 덜렁거리는 자신을 잘 챙겨준다.’라며 인정해 주었습니다. 아내의 그런 말 한마디가 자존감이 낮은 저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 땅을 떠날 때도 아내는 딸들에게 장차 아빠처럼 잘 챙겨주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 하였고, 저에게는 마지막까지 (석 달 간병휴가) 곁에 함께 있어 주어 고맙고 행복했다고 하였습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매사에 부정적이었던 저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25년을 긍정의 사람인 아내와 함께하며 병든 내면이 많이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소그룹(신앙서적 독서모임)을 진행합니다. 소그룹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진솔하게 나누고 공감해주며,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뿌뜻합니다.

(2025. 7. 19.)

작가의 이전글칭찬과 격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