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외면하려 해도 꿈조차 이별에 쫓기다가
불러도 멀어지는 뒷모습에 한없이 흐느꼈어.
그 좋던 밥을 못 다 비우고
익숙한 업무도 갈수록 낯설기만 해.
불같은 여름인데 찬 겨울 칼바람처럼
날카롭고 시려.
니가 없어서.
매일 밤하늘에다 화해(和解)를 연습하지만,
허공은 쓴 약처럼 허무(虛無)만을 뱉어내.
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는데,
니가 있을 때 너무 행복했는데,
한없이 작아진 나는 갈수록
지워지고 있는 너와의 첫사랑을 되뇌며
거울도 피하고 있어.
니가 없어서.
407번지! 너의 집 모퉁이에 무작정 기대 보지만,
부끄러운 불 빛에 숨고 또 숨다 그냥 돌아왔어.
"너를 데리고 세상을 이길 거야"
"후회 없이 한 번의 사랑으로 끝낼 거야"
내게 다짐했었지.
너에게 약속했었지.
그것을 알기에 부끄럽고 처절해.
그것을 너도 알기에 너무 미안해.
내가 없어서.
P.S
사랑을 전제로 다툰다는 것은 참 오묘하고 불편한 감정이다. 사랑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 다툼은 진정 상대를 공격하려는 의도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더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본질 같다. 서로에게만 더 특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서운함이 욕심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싸움의 목적이 이별이 아님에도
이별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싸움이 길어지는 경우다. 결국 서로 이해와 반성의 시간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한쪽에서 먼저 이별을 예고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소위 합의에 의한 이별보다 일방의 통보에 의한 이별은 둘 다 편하지 않고 상처가 깊다. 만일 극적으로 화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상처가 아물지 못하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노력을 못할 경우 더 큰 상처를 받고 헤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양실조'보다 무서운 것이 '사랑실조'라는 것이다.
싸움의 원천이 적대적 관계를 만들기 위한, 헤어지기 위한 것이라면 새로운 사랑으로 결핍을 충족시킬 기회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싸움은 두 가지 선(line)을 지켜야 '사랑실조'를 잘 치료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선'과 '시간의 선'이 그것이다.
아직 사랑한다면 인간관계 자체를 깰 수 있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아야 하고, 싸움의 시간도 사랑의 시간보다 길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소위 '시간'을 가지더라도 너무 길지 않아야 인연의 끈이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마음처럼 되겠냐만은!
나는 그녀의 사회생활에 일정하고 주기적인 부담을 주었다. 남자 사람들과 늦은 회식 등에 제동을 걸려 했고, 그녀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게 한 번 부정적으로 다툰 부분은 갈수록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말다툼으로 연결되는 시간들이 자꾸 그림자처럼 우리의 사랑을 따라다녔다.
이성적으로는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이런 욕심은 자존감 부족이거나 소유욕임을 알면서도 막상 얼굴 보면 이성보다 감성이, 감성보다 욕망이 악성코드처럼 앞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계속 그럴 거면 헤어져" 결국 먼저 다가왔던 그녀가 먼저 멀어지자는 말을 했다. 진위는 확실치 않지만 지친 것이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급정지되고
그녀가 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참 이상하다. 말싸움이 없다는 후련함은 거의 느낄 수 없었고, 무미건조하고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상에도 큰 영향이 왔다. 출근할 때, 점심 먹을 때, 걷다가도, TV를 보다가도 그녀와 같이 했던 과거가 먹먹하게 겹쳤다.
자다가도 한 번 깨면 아침까지 그냥 꿈벅였다. 모든 가요가 내 얘기 같고, 지나치는 연인들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냥 조용히 일하면서 살면 되지'라고 위로하면 할수록 보고 싶은 마음만 더욱 커졌다.
나는 아직
헤어질 마음도 헤어질 용기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모든 사랑과 이별의 실마리는 떨어져 살면서 스스로 확인되는 마음에 달려있고,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