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407번지

by 고하

1.

국화잎 하나하나 눈물에 갈기갈기

가려진 니 얼굴 위에 가로막힌 내 가슴 앞에

아이처럼 밝게 떠난 여행이었는데

이렇게 차갑게 흰꽃 아래 저 아래 누웠다니.


머리가 솟구치고

손발이 얼어버린


기억의 끝 무서운 세상의 끝

그 순간 위에 그 영겁 앞에

괴롭도록 선명한 슬픈 니 얼굴을

보낼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이 무력감이라니.


심장이 흐느끼고

눈물이 말라버린


이럴 줄 알았다면

시간 한 톨 쪼개고 또 쪼개 잘할 것을

내가 니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니 곁에 내 운명도 같이 했어야 할 것을


니 운명을 훔쳐서라도

내 운명을 팔아서라도

2.

내 손으로 너를 안고 추억을 가져갈래

악몽조차 짊어지고 그리움도 가져갈래


이 세상 함께 할 수 없음은 아픔보다 더 아픔.

영원히 만질 수 없음은 죽음보다 더 죽음.


너는 내 음악이었고 내 용기였는데

너는 내 파도였고 바로 나였는데


내가 가면 니가 울고 니가 울면 나 못 떠난

기억할 수도 돌아올 수도 없는 매정한 그 길


기억은 뭐하고 있었나

사랑은 뭐하고 있었나


내가 가면 니가 울고 니가 가면 내가 죽는

기다리다 끝난 삶의 왜곡 앞에 무너진 세상


누구나 끝이 있다는 거 알아

오늘이 내게 그 끝인 거 같아


누구나 이를 몰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세상에도 있었음을

모두 다 떠나고 알아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음을


-나는 그녀의 집 407번지에서 목놓아 울었고, 그 후 다시는 그녀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P.S

인생은 유한하지만 우리들은 그 유한과 무한에 대한 특별한 고려 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만일 사람의 운명을 태어날 때 숫자로 알려준다면 우리들은 그 삶을 긍정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까? 아니면 삶의 의미를 못 찾고 나태하게 살아갈까? 이 불안정한 생명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누구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는 지금 건강하신가?

당신의 형제는 어떠한가? 혹시 당신은 사고로 인해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이 있는가?

생명을 잃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역사 이래 아직까지- 돌아온 경우는 과학적으로 없다.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은 떠나는

그 순간이 영원처럼 고통스럽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에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고통을 받는다. 더하여 엄청난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온다. 생전에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미처 깨닫기 쉽지 않다.

이를 '시계 알람'으로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준다면 좋을까?

자신과 거의 동일시하는 연인의 죽음은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있기 마련이다. 같이 했던 시간이 길든 짧든 연인의 죽음 앞에 남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멀어지고 작아진다. 죽은 연인의 가족과 안면조차 없다면 홀로 그 황망한 사건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국 남은 사람은 시간이 약이 되었든 그냥 묻었든 일상을 살아가기도 하고, 일상에서 여러 방법으로 떠나기도 한다. 신은 우리 인간에게 이런 고통은 왜 던져 주었을까?

"방금 들어온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현지시간 8시 52분 파리에서 출발해 대한민국으로 오는 OO-812 항공기가 기체결함으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 256명 승무원 15명 총 271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승객 중 245명이 한인 또는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


나는, 그녀의 가족여행에 닥친 형언할 수 없는 날벼락을 공항에서 기다리며 마주 했다.

그녀의 부모님께 처음 인사하기로 해서 나름 팻말 이벤트도 준비하고 도착 3시간 전부터 공항에 와 있었다. 그냥 나의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일가족이 그 어떤 말도 없이 갑자기 세상에서 증발했다는 소식에 모든 게 정지되고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물이 나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남은 가족인 그녀의 할머니 옆에서 나는 그녀의 짧은 삶이 담긴 하얀 보자기와 더 짧은 그녀와의 사랑을 강에 뿌렸다. 그리고 나에겐 더 무서운 것이 왔다.

내 사랑이 세상에서 실종되었음을 받아들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여전히 빛나고 있는 세상도 보기 싫었다. 나는 그녀가 살았던 407번지 문 앞을 매일 서성였다. 하루라도 그 진청색 대문을 보지 않으면 먹고 있는 약물도 내 신경을 통제하지 못하고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그녀를 기다리는 건지 뭔지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그녀의 문 앞에 가야만 삶이 그나마 부팅(booting)되었다.

그녀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없다.

앞으로도 없다. 영원히 없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기재(奇才)는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만은 매일매일 뚜렷하다. 그래서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