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푸른 바다 꼭대기엔 garden이 있다.

by 고하

그녀와 처음 갔던 외로운 바다

시간이 노을에 한 참을 기대어 잠들었을까!

푸른 바다 어디론가 걷고 있는 내가 보였다.

얼마나 바쁘게 걸었는지

꿈조차 주어진 시간의 재촉을 직감했을까?

푸른 바다 꼭대기엔 넓은 Garden이 있었다.


멀리 경계 쳐진 히노끼 나무

나체(裸體)처럼 유혹하는 이름 모를 노란 꽃밭

한가운데 흰 구름처럼 잠든 이.

그녀였다!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인가?

닿을 듯 말 듯 그녀의 얼굴은 유독 하얗고

삶과 죽음으로 갈린 세상을 잊은 듯 평화로운

푸른 바다 꼭대기엔 우리만의 Garden이 있었다.


이곳에선 세상의 상식도 편견이었고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의 시절을 되살려냈다.

진짜 그녀였다!

열반(涅槃) 같은 Garden이 저세상이라 해도

웃고 있는 그녀와 기꺼이 묻힐 수 있는

푸른 바다 꼭대기엔 아름다운 Garden이 있다.


제발!

P.S

사랑의 아픔은 다양한 후유증을 낳는다. 그중 원하지 않는 이별의 아픔은 가늠하기 힘든 세상에 갇히기도 한다. 심지어 작별인사도 못한 사별은 평생 헤어질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슬픈 사연이 되어, 지워지지 않는 매직처럼 가슴속에 큰 상처로 그어진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갑작스러운 사별 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연 수단이 있다면 '꿈'이다. 요즘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신이 있다면 갑자스런 사별이 발생한 경우 최소한 서로 작별할 수 있는 시공간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꿈이든 무엇으로든.

나는 그녀를 보내고 문득문득 내게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환영과 환상에 빠졌다. 아니 그 환상을 찾았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다가 이내 힘없이 다시 잠이 들었고 긴 꿈을 꾸었다. 그녀와 함께 갔던 바다! 나는 푸른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그 꼭대기 하늘에서 아름다운 Garden을 찾았다. 나는 사고로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였고, Garden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인식이 나를 지배했다. 한 참을 걸어 정원에서 평화롭게 잠든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와 나만이 있는 Garden! 꿈은 소망충족 수단이라 했던가!

나는 그렇게 삶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매일 그녀의 407번지 청색 대문을 살피는 등 나름의 루틴으로 정착되어 갔다. 슬픔을 이기기보다는 슬픔과 같이 사는 방법으로써! 그러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85일째 되는 날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녀의 집을 지켜주신 그녀의 할머니께서 소천하셨고 남의 집이 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무언가에 이끌린 것인지도 모르게 그 길로 출가하여 산으로 들어갔다. 대학 때 잠시 갔었는데 같이 살자고 하셨던 주지스님이 계신 그곳! 경남 거창 고견사. 신라시대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창건한 아주 오래된 곳으로 산세로 보면 일곱 번째 봉우리에 들어서 있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암자 규모의 절에서 사는 길을 찾았다. 주지스님은 다 알고 있으시다는 듯 나를 받아 주셨다.


"잘 왔네. 이제 짐 내려놓게"


새벽 3시. 길을 잃을 정도로 안개로 가득한 경내를 조심조심 걸어 달기물을 받아 올리며 예불을 시작하면 저녁 9시 취침까지 나는 끝없이 일하고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5시간 산길을 걸어 합천 해인사 원당암에 가 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밭일을 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주지스님은 내게 쉴 틈 없이 일과를 주셨고, 매일 저녁 산 중턱 계곡에서 말씀 없이 같이 목욕을 해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그렇게 슬플 시간이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고 뭔가 해야 하는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의상봉(사진출처: 네이버)

그렇게 시간과 세월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몇 년이 흘렀을까? 108계를 받은 나는 스님 천고(天告)가 되어 있었다. 매일 -의상대사가 올라 참선하던- 의상봉에 올라 하늘에 무언가 말하고 내려오는 내 모습에 주지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다. 나는 주지스님의 배려로 고견사에 계속 기거하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잊지 않았지만, 가슴속에서 꺼내 그녀의 얼굴을 의상봉 하늘 위에 보내 주었고. 매일 점심을 하고 의상봉에 올라 그녀에게 나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