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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Nov 02. 2024

[소설 16화] 차마 내키지 않는 일(2)


"김병장님 제대하신 이후로는 소식을 못 들어서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었는데, 우와!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습니다."


김소장은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우리 사무실에 들어올 때 혹시나 해서 긴가민가 했었는데, 최병장이 이렇게 들어올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김병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음, 나야 이 부동산 하면서 잘 지내고 있지. 자네는 잘 지냈고? 제수씨이신가?"
김소장이 찬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지금 살고 있는 집 계약이 다 돼 가서요. 집사람이랑 이 아파트 전세 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그래. 잘 됐네. 여기 이 아파트 입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전세 매물 나온 것도 많으니까, 얼마든지 좋은 가격으로 고를 수 있을 거야. 새 아파트라 집 내부도 깨끗하고 단지 내 조경도 잘 돼 있고. 내가 접수해 놓은 매물들 많으니까 그거 다 보여줄게. 제수씨 저만 믿으세요."
김소장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병장님이 소개해 주신다고 하시니까 더 안심이 되는데요. 하하."

"그래, 그래. 나만 믿으라고."

김병장의 군대 제대 이후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오랜만의 재회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 제대한 지도 10년이 넘었구나. 근데 난 아직도 한 번씩 입영 통지서 받는 꿈 꾼다니까."

"저도 며칠 전에 영장이 집으로 날라 오는 꿈을 꿔서, 깨고 난 뒤에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릅니다. 하하."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가면서 두 사람의 군대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아직 새 집이라 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텅 빈 집 안은 남자들의 군대 비하인드 소리에 집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두 사람의 큰 목청이 부끄러워진 찬희는, 그나마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여러 집을 돌아보았지만 집 구경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남자들 때문에 찬희는 혼자 휴대폰에 메모까지 해가면서 여러 집들의 특징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했다.

동호수, 방향, 창 밖으로 보이는 조망 등을 모두 기록한 찬희는 집에 가서 천천히, 진우와 계약할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집을 보는 동안에도 수다로 끊임없었던 남자들은 끝내 아쉬웠는지, 술자리로 옮겨서 남은 이야기들을 더 하자고 했다.

집만 얼른 둘러보고 내일 출근을 위해 집으로 가려고 했던 찬희는, 혼자만 집으로 돌아가기가 뭣해서 그들이 들어가는 아파트 상가 안 치킨집을 따라 들어갔다.

​주문해 놓은 치킨을 기다리며 진우가 김소장에게 말했다.
"그때 김병장님이 저한테 담배 같이 피우자고 하셨을 때 받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이문식이 그 인간 하는 짓은 도저히 못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 나도 안 피는 사람한테 담배 권하기는 좀 그랬지만, 그때 우리 생활이 좀 힘들었지 않나. 나도 그 인간한테 많이 당했지. 그걸 버티려면 담배 밖에 없겠더라고."

"네, 맞습니다. 저도 웬만한 일은 정신력으로 버티는데, 군대는 참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럼 우리 그때 생각하면서 담배나 한 대 피고 올까?"

"좋죠. 여보 잠깐만 나갔다 올게."

이렇게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가게 밖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찬희는 예전에 진우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이 기억났다.

담배를 군대에 가서 배웠다는 말.
군대 고참 한 명이 담배를 권해서 그 이후로 한 번씩 핀다는 말.

'담배를 권했다는 고참이 저 사람이었구나.'

찬희는 진우가 한 번씩 담배 냄새를 풍길 때마다 질색을 했었는데, 그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있다고 생각하니 당사자인 김소장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몸에도 안 좋은 걸 굳이 권해 가지고...'

찬희는 담배를 다 피고 들어온 두 사람이 옷에 담배 냄새를 그대로 묻힌 채 자신의 앞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차마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중간에 혼자 일어날 수는 없어 별 말없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만 앉아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 길어지는 듯해, 내일 새벽 출근을 핑계되며 진우에게 얼른 일어나자고 성화를 부렸고, 두 사람은 다음번에는 자신들이 각각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이병장, 한병장과도 함께 보자고 말하면서 치킨집 밖으로 나왔다.

찬희는 김소장에게 집 중개를 부탁하는 것 또한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오늘 본 집들을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는, 김소장에게 인사를 하고 잽싸게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찬희는 진우를 슬쩍 떠 보았다.

"다른 집들도 매물로 나온 거 더 있을 텐데, 우리 다른 부동산에도 한 번 알아볼까?"

역시나 했지만, 진우의 대답은 단호했다.

"에구, 번거롭게 뭣하러 다른 데 더 알아봐. 김병장님이 알아서 다 해주실 텐데."

찬희는 왠지 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소장이 보여준 집들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며칠 뒤 김소장이 보여 준 매물 중 하나를 계약하기로 했고, 계약서를 쓰는 당일은 출근을 핑계로 자신은 들리지 않고 진우 혼자만 대박 부동산에 보내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그리고 계약한 집으로 이사 온 이후 한 번씩 진우가 군대 모임에 간다고 할 때마다 괜스레 신경은 쓰였지만, 애써 나쁜 상상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진우가 폐암에 걸려 세상을 달리했고, 그 모든 일의 발단은 김병장이라고만 여겼다.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사람.'

찬희는 주민센터에서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겨 있는 서후의 손을 꼭 잡고는 집으로 뛸 듯이 걸어갔다.

엄마에게 안긴 서후는 그저 엄마를 바라보며 방긋 웃고 있었고, 그런 서후를 보며 찬희 또한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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