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제대로 된 근무가 되지 않아 찬희는 회사에 육아 휴직을 쓴 상태였다.
친정 엄마에게 서후를 맡기면 된다 싶어서 서후가 태어난 이후로 육아 휴직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서후를 위해서가 아닌 남편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간 사용한 육아 휴직과 경조 휴가를 끝내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다.
찬희에게는 육아 휴직을 들어가기 전과 휴직이 끝난 이후 달라진 것들이 많았다. 제일 큰 차이점이라면 당연히 이제 자신에게는 남편이 없다는 것이다.
찬희의 삶에 빛이 되어 주었던 진우는 이제 찬희 곁에 없다. 그건 누가 뭐라 한들 애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잊어버리자...'
생각하면 할수록 소금이 뿌려진 상처처럼 가슴이 쓰라리고 고통스러웠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외에 또 달라진 점이라면 출퇴근하는 집과 출퇴근하는 교통수단이 바뀐 것이다. 진우와 살던 예전 집과는 달리, 이사하게 된 선희의 집은 찬희의 직장과는 꽤 거리가 먼 곳이었다. 버스를 탄다면 예전 출퇴근 시간보다 30분 정도는 더 걸리는 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멀어진 거리와는 달리 지체되는 시간은 예전 집과 큰 차이가 없었다.
찬희에게는 자신의 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후가 밤에 열이 날 때는 진우가 서후와 찬희를 태우고 병원에 갔었다. 하지만 진우의 증세가 악화되면서는 서후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는커녕, 자신의 치료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 또한 힘들어졌다. 그렇게 되자 찬희는 직접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에 있는 남편의 준중형급 SUV 차량으로 운전을 해보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 탈거라고 사놓은 중고 자동차였다. 하지만 면허만 있었지, 완전 초보 운전자인 찬희가 타기에는 차가 너무 커서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 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찬희는 진우에게 고민을 얘기했다.
"혼자서는 저 차 도저히 못 몰겠어."
그러자 진우가 말했다.
"나도 좀 걱정되긴 하더라. 아니면 그냥 경차를 한 대 살까?"
갑작스러운 진우의 제안에 찬희는 집에 차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차를 한 대 더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진우는 예전처럼 몸이 다시 건강해진다면 온 가족이 함께 타야 하니, 자신의 SUV는 처분하지 말고 경차를 한 대 추가로 사는 게 낫겠다고 했다.
운전을 안 할 수는 없는 처지인 찬희도 어쩔 수 없이 진우의 뜻에 동의했고, 말 나온 김에 진우는 중고차 딜러인 친구에게 연락해서 함께 경차를 보러 가게 되었다.
찬희는 세차 직후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는 연둣빛 경차가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친구의 권유로 중고차 매장 주차장 안과 매장 밖 도로를 직접 운전해 보니, 어느 골목이든 쏙쏙 들어갈 수 있는 차의 크기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라면 남편의 차와는 달리 혼자서도 충분히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경차는 여자들이 많이 찾는 차라서 중고라도 어느 정도 시세가 있는 편이라고 친구인 중고차 딜러가 알려 주었다. 아주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수중에 그 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하던 찬희에게 진우가 말했다.
"지난번에 받은 암진단금을 쓰자."
암을 확정받으면서 보험회사에서 받은 그 암진단금을 쓰자는 것이었다.
찬희는 암진단금만큼은 전액 모두 진우를 위해서 쓰고 싶었다. 그런 자신에게 진우의 암진단금을 쓴다는 건 참 내키지 않는 일이라 괴로운 마음에 그녀는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진우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려면 자신이 몰 수 있는 차가 없으면 안 되니, 진우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다 도움 되는 일이라며 긴 고민을 결론지었다. 그렇게 찬희는 진우의 암진단금으로 그 빛나는 연둣빛 경차를 질러버렸다.
차를 사기 전에 잠깐 차를 몰아 본 것 과는 달리, 차를 산 후 막상 혼자서 운전을 해보려고 하니 험난한 도로는 무섭기 짝이 없었다. 차에 적응하는 며칠 동안은 진우가 옆에서 세심하게 작동법과 교통 신호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픈 진우에게 마냥 기댈 수는 없어 혼자 차를 몰고 나온 찬희는 도로가 너무 무섭기만 했다.
'오빠가 옆에 앉아만 있어 줘도 안심일 텐데...'
쌩쌩 달리는 차들 속에서 차선 변경하는 것마저도 힘들어지자, 절절매는 자신을 보면서 찬희는 얼마 전 보았던 유튜브 짤도 떠올랐다. 예전 어느 시트콤에서 나왔다는, 초보운전자인 여주인공이 차선 변경을 못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해 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시트콤에서 나오는 우스운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운전이 힘들다 느껴질 때마다 찬희는 진우의 암진단 자금으로 산 이 연둣빛 경차를, 진우가 곁에서 지켜준다 생각하며 애지중지 잘 몰고 다녔다.
그렇게 진우가 남기고 간 차를 몰고 첫 출근을 하게 된 찬희는 차에 올라타며 호흡을 길게 가다듬었다. 이제 그가 없어도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핸들 또한 힘주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