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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Oct 08. 2020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

쿠쿠야, 너는 못 하는 게 없구나.


어쩌다 보니

점심을 걸러서(모싯잎개떡과 송편을 몇 개 먹기는 했지만 그건 밥이 아니니까요.)

갑자기 허기가 져서


급히 밥을 안치고

어제 사온 꼬막비빔밥 재료와 소고기파개장을 꺼냈어요.


통통하고 신선한 꼬막을 보며 한 번 설레고

증기 배출을 시작하는 밥솥의 촤~ 소리에 또 한 번 설레고

보글보글 끓는 고깃국 냄새에 취하며 허기가 극에 달했...



밥솥의 숫자가 종료 1분 전임을 알려줘서 주걱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는데

순간 들리는 친절하고 명쾌하고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


제 귀를 의심하고 싶었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들렸어요.










"쿠쿠가 자동세척을 완료하였습니다."








흐엉. 흐엉.

남편노무스 오전 내내 밥솥 세척을 하더니ㅜ

메뉴에 세척이 세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 진짜 아 진짜 아 진짜


.


.


.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군요.


.


.


.


.




그 밥을 조용히 먹어버린 것도 역시 예상 밖의 일이구요.




허기 때문에 먹은 게 아니롸!

남편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에 먹은 거예요.

충분히 깨끗할 거야. 그 인간이 오전 내내 청소를 했으니까...


남은 밥은 그 남자 입에 다 넣을 거예요. 저는 이제 배 안 고파요.








저는 오늘도 17번을 뽑았어요.

인생이란, 허허 그것 참.

이쯤 되면 여전히 숟가락을 안 치운 제가 바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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