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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pr 03. 2024

10. 건강과 환경: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높이는

일과 대인관계가 중요한 스트레스의 원천인 것은 사실이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원천이 있습니다. 바로 신체적 건강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대표적인 고통의 원천은 질병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질병을 경험하며 삽니다. 가벼운 감기일 수도 있고, 심각한 만성질환일 수도 있지요. 그 종류가 무엇이든 신체적 건강 상의 문제는 중요한 스트레스원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먼저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픈 사람에게 관대합니다. 회사에서도 몸이 아프면 병가를 내고 잠깐 쉬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지요. 학교에서도 질병에 걸린 학생의 결석은 무단 결석과 다르게 처리합니다. 몸이 아프면 일상적 활동에 큰 지장을 줄 만큼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고통스러운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만성적인 신체적 문제에 좀 더 집중하곤 합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질병도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도움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지요. 당사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집중해서 치료를 진행합니다. 


만성적 문제는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물론 당사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그 문제를 다룹니다. 본인의 고통과 직결되니까요. 반면 주변 사람들은 점점 무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에는 걱정합니다. 많이 돌봐 주고요. 그러나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된 삶이 있기 때문에 점점 신경을 덜 쓰게 됩니다. 환자 개인의 지루하고 고된 전투가 시작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에게 만성적인 신체적 문제가 있는지 꼭 확인하곤 합니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본적으로 좀 더 많은 양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평가나 치료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다양한 물리적 환경에 노출됩니다. 주변의 소음이나 열기, 습기, 먼지, 공기 등은 우리의 몸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주변의 지리적 조건이나 주거 환경, 도로의 특성 또한 중요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 요소는 경우에 따라 스트레스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녀 본 분이라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어디에 사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넓고 큰 집이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하고 작은 주거 공간이더라도 안전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지요. 반면 도처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당히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혼자 사는 방을 옮기는 것이니 이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주거환경이 바뀌었다는 측면에서 이사와 비슷한 영향을 주었지요. 대략 10번 정도이니까 1년에서 2년에 한 번 정도 이사를 한 셈이네요. 대부분 경제적 여건 때문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학교 3학년 정도 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 근처의 오래 된 주택에 ‘잠만 자는 방’을 얻어 살고 있었지요. 그 시절에는 일반 가정집의 방을 각각 하나씩 세를 주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도 그런 곳이었지요. 독특하게도 방이 5개 있고, 화장실과 거실을 함께 쓰는 구조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시고 집도 깨끗하게 유지되는 편이라 저는 마음에 들었지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옆 방에 사는 사람이 조금 독특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건축학과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정신장애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었지요. 사람의 마음이 아프면 그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옆 방에 사는 사람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어서 조용할 것이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은 정확하지 않았지요. 화장실을 드나들 때나 방 문을 여닫을 때 항상 쾅 소리를 내며 닫았고, 의미를 알 수 있는 괴성을 종종 지르곤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벽에서 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날카로운 무언가로 벽을 긁는 소리였지요. 다행히 저는 학교에서 밤샘작업을 많이 한 탓에 방에 들어오면 거의 쓰러져 잠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일어났지요. 


그날도 저는 전날의 고된 작업 때문에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수업은 들어야 해서 화장실로 향했는데, 화장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옆 방 사람이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지요. 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40분이 지나고 50분이 지나도 그 사람이 나오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지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10분을 더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다시 문을 두드리는 순간, 그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겁니다. 저는 몹시 당황해서 뒤로 한 발 물러섰는데, 그 사람은 그대로 화장실을 나오며 저를 밀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욕을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요.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등교를 해야 하기에 재빨리 씻고 나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제 방문을 쾅쾅 두드리는 겁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문을 잠그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당장 문을 열라면서 발로 문을 차기 시작했지요. 무서웠습니다. 자꾸 이러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제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지요. 그래서 곧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수 분 내에 경찰들이 찾아왔습니다. 그제서야 흥분이 가라앉은 그 사람은 웬 일인지 경찰들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공손해졌지요. 제가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은 고소가 가능하지만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시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조심스러워 했지요. 그 사람은 거듭 사과하면서 반성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 그대로 경찰을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살면서 했던 실수들이 많은데, 그때 경찰을 그대로 돌려보낸 것이 손에 꼽히는 실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이 떠나자 그 사람은 다시 태도가 돌변했지요. 그 날은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 이후부터 의도적으로 더 큰 소음을 내고, 제가 평소 화장실을 쓰는 시간마다 자신이 먼저 들어가 1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일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께 말씀드려 보았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지요. 저는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었지만, 이사를 할 때면 항상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살며 전체적인 분위기나 환경 여건이 어떤지를 꼼꼼하게 살피는 습관이 생겼지요.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대표적인 스트레스원을 살펴보았습니다. 공감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살펴본 스트레스원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원을 모두 살펴보려면 아마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스트레스원이 다양하다는 사실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은 사람마다 스트레스 수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스트레스 수준은 제각각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수준의 스트레스를 보고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동일한 일을 겪었는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일까요? 다음 시간에는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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