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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Feb 08. 2018

제주도로, 짐싸서 출발!

부자여행:제주편#03

저가항공과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비행기 도착시간과 출발시각을 확인한 다음 렌트카까지 예약하는 것으로 출발 전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해가 짧아질수록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연말이 그리고 새해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는 우리집에서 연말의 번화함을 느끼기는 참 힘들다. 집주변은 언제나 자연이 주는 고요함으로 가득찼다. 집에는 달력도 없어서 오늘이 몇일인지 잘 모를 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연말은 진우와 아빠의 제주여행 때문인지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진우는 하루하루 제주도 가는 날을 손꼽았다. 방학도 되지 않았는데 진우 마음은 벌써 방학이었고 벌써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원래 우리가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은 방학이 시작된 이후인 줄 알았다. 예전엔 보통 크리스마스 이브 전에 방학식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진우네 학교 겨울방학은 12월 30일날 시작했다. 미리 학교 일정을 확인해 보지 않은 내 실수였지만 날짜를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체험학습을 신청하기로 했다. 지난 번 4월의 일본여행 때 3일과 경주 2일을 포함해 진우는 이미 체험학습이 가능한 7일 중 5일을 써버린 것이다. 다행이 우리가 제주에 가는 날은 29일이었고 방학이 30일이었으므로 남은 2일만 신청하면 됐다. 진우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간 날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것으로 한 해 동안 쓸 수 있는 체험학습 7일을 모두 사용한 셈이다.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다녔는데도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나보다. 미리 방학숙제와 여러가지 안내문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진우는 이미 여행자로 변신해 있었다.


여행 하루 전날은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소용되는 주요 물품을 확인하고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우린 내일 떠날 것이고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여행짐을 꾸려야 한다. 1박 2일의 여행짐은 가방만 메고 가는 듯 ‘아무것도 없음’에 가깝지만 이번 여행은 그 전 여행보다 무려 두 배나 긴 2박 3일이므로 많은 짐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챙긴 짐은 1박 2일 여행짐과 ‘똑’같았다. 우린 어차피 2박 3일동안 한 가지의 옷만 입을 것이고 숙소에 씻을 도구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진우나 나나 별다른 짐을 넣지 않았다. 지난번 여행처럼 읽을 책과 카메라가 중요한 여행짐이었다. 여행을 다닐수록 가방은 가벼워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같다. 여행짐 목록을 기록하고 짐들을 가방 앞에 나열해 둔 뒤 잠자리에 들었다. 짐은 매번 그렇듯이 출발 당일 아침에 넣을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설렘 그 자체로 우리를 흥분시켰다. 진우나 나나 출발 당일은 귀신같이 눈이 떠졌다.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출발비행기를 오후로 예약해 둔 덕에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비행기출발 시각은 오후 2시 30분. 출발 20분 전 탑승완료이므로 2시까지만 도착하면 될 것같아 파주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파주에서 김포공항까지는 바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초행길이고 시내버스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전철과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도 서울까지 가야 김포공항행 지하철을 탈 수 있어서 돌아가긴 매한가지였다.


아내에게 김포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면 30분이면 가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여행은 언제나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집에 남아 일상을 살아야 할 아내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1시 정각에 출발하는 전철을 타고 딱 한 시간이 걸려서 공항에 도착했다.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시계는 벌써 두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포공항 국내선에 티웨이 항공권 발권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2시 30분에 제주로 출발하는 티웨이 항공의 발권이 5분 후 마감한다는 것이었다. 1시에 출발해 쉬지 않고 왔는데 발권마감까지 겨우 5분이 남은 것이다. 1시 전철을 놓쳤다면 제주여행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대충 출발시간을 정한 것이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러면서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우리 부자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리고 누가 됐든 감사한다.


서둘러 발권을 하고 길게 늘어서 있는 보안수속대를 거쳐 탑승게이트에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을 따라가보니 게이트에서 비행기가 바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버스로 이동한 후 계단을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싸더라니. 게다가 비행기는 발권 후 탑승하지 않은 승객을 찾느라 한참이 지난 후에야 활주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두 명이 5만원도 안되는 항공권이니 그려려니 해야겠지만 다음엔 조금 더 값을 치루더라도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를 타겠노라 생각했다. 그 때 진우가 한마디 던졌다.


“아빠. 저 여기 내려가 보는 거 처음이에요! 완전 신기해요”

“어? 어! 아빠도. 생각해보니까 아빠도 처음이네. 그리고 비행기도 가깝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우와. 내가 여길 걷다니.”


난 진우의 말에 내가 한 술 더 떠서 오히려 이런 경험이 더 좋다고 부추겼다. 저렴한 항공권만 찾다가 몸만 피곤해 졌다고 불평하던 내가 아이의 한마디에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다. 사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긍정의 힘은 없고 돈이 주는 편한함만 쫓고 있었나 보다. 진우 말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는 것. 새로운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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