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삽질'하고 있는 당신에게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요>

by 톺아보기

존 클라센은 칼데콧상과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등 유수한 그림책 관련 상을 수상한 캐나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모자 삼부작, <내 모자 어디갔을까>,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모자를 보았어>과 도형 삼부작 <세모>, <네모>, <동그라미>등이 있습니다. 도형 삼부작에서도 보여지듯이 단순한 구도와 담백한 캐릭터를 통해 존 클라센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유치원 등에서 존 클라센의 내 모자 시리즈나, 도형 시리즈는 언제나 환영받는 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 아이들 뿐일까요. 똑같은 모자 시리즈라 하더라도 <내 모자 어디 갔을까>와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는 '모자 실종'을 둘러싸고, 잃어버린 이와 훔쳐간 이를 주체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내 보는 이로 하여금 '입장 바꿔'의 묘미를 느끼도록 합니다.



존 클라센의 캐릭터들은 투박하지만 그 캐릭터들의 눈동자 방향만으로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그의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에서 돌이 쿵>같은 경우에는 '모자'를 쓴 거북이, 곰, 뱀이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들간의 미묘한 '관계'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돌로 인해 그림책임에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sf블록버스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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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의 끝은?


존 클라센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 작품들도 있지만 다른 글 작가의 작품에 그림을 그린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 중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이하 샘과 데이브가 ....)>는 존 클라센이라는 그림 작가의 매력, 그리고 나아가 그림책의 묘미를 가장 잘 드러낸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로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맥 바넷이 글을 쓴 <샘과 데이브가.....>는 '월요일에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로 시작됩니다.



"언제까지 파야 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파야 해. 그게 우리의 사명이야."


과연 두 사람은 저 '사명'을 수행해 냈을까? 샘과 데이브가 땅속 깊숙한 곳까지 내려왔지만 두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걸 찾지 못합니다. 밑으로만 파는 게 문제일까 싶어서 다른 쪽으로 파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도 파봅니다. "난 지쳤어.", "잠깐 쉬는 게 어때?" 까무룩 잠이 든 두 사람, 뼈다귀를 찾아 강아지가 판 구멍으로 그만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부드러운 흙 위에 털썩! 두 사람은 아무 것도 못찾은 걸까요? 그런데, 땅에 털썩 떨어진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여기까지가 맥 바넷이 쓴 글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마어마하게 멋진 건', 무엇일까요? 그런데 , 존 클라센의 그림은 거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합니다. 땅 속으로 이리 저리 파고 들어가는 샘과 데이브, 그런데 그들은 기가 막히게도 땅속 보석들을 피해다니며 땅을 파곤 합니다. 계속 아래로 파면 만날 것을 방향을 틀고, 거기에는 더 큰 보석이 있는데 두 사람은 또 피해가고 이런 식이죠.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데도 '어마어마하게 멋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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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라센의 그림을 더한 맥 바넷의 글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저 땅 속의 보석이 어마어마한 것일까? 아니면 그 땅을 파는 행위 자체가 어마어마한 것일까? 어쩌면 삶이란 땅을 파는 것 그게 다가 아닐까?



그런데, '땅을 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흔히 '삽질한다'는 그런 의미인 걸까요? 해석하기 나름이겠죠. 맥 바넷의 글밥은 함께 땅을 팠던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어마어마하고 멋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존 클라센은 해석의 여지를 더합니다. 처음 땅을 파러가는 곳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런데 털썩하고 떨어진 땅 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삽질'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런 시간이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존 클라센은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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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초대를 받은 소년


이와 비슷한 여운을 남기는 또 한 권의 그림책이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요(이하 그날, 어둠이...)>입니다. 매 달 수많은 그림책이 쏟아져 나오고, 그림책 시장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회자되는 그림책들은 늘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샘과 데이브가 ...>가 대표적인 존 클라센의 작품이라면 <그날, 어둠이....>는 이게 존 클라센 작품이예요?라고 할 만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입니다.



<위험한 대결> 시리즈의 레모니 스니캣이 글을 쓴 이 작품 속 주인공은 큰 집에 살고있는 라즐로라는 소년입니다. 그 또래 소년들이 다 그렇듯이 '어둠'을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낡고 오래된 집의 어둠은 매일 밤 집안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라즐로는 밤이 찾아와도 어둡지 않게 불을 밝혀두지요. 어둠이 지하실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라즐로는 낮에 그곳을 찾아가 인사라도 나누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실행에 옮기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이 라즐로를 찾아옵니다. 뭔가 보여줄 게 있다며. '지하실은 위험해!' 많은 서양 호러 영화에서 비극의 시작은 지하실로 부터 시작되지요. 늘 주인공들은 그 비극의 장소를 제 발로 찾아가는데......



손전등을 들고 지하실로 간 라즐로, 어둠은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서랍 아래 칸에서 무언가를 찾아줍니다. 어둠이 찾아준 물건을 보면 이야기의 맥락이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날, 어둠이....>는 어둠을 '인격화'한 그림책이지만 흔히 그림책들이 그러듯이 어둠을 캐릭터로 만드는 대신,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실감나게 어둠을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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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소년 라즐로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두려운 시간입니다. 그건 그림책에서처럼 빛이 비치지 않은 공간적 의미일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어른의 세계에서 어둠은 마음 속 공간으로 확장되곤 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은 말한다. 그 어둠의 시간이 꼭 '암흑'만은 아니라고. 용기를 내어 어둠의 시간을 건너가면 그곳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고. 지금 당신이 건너가고 있는 어둠이 결코 어둠만은 아니라고 말을 건넵니다.



<샘과 데이브가....>에서 땅파기라던가, <그날, 어둠이...>의 어둠은 모두 우리 삶에 있어서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두 권의 그림책은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부정의 시간, 부정의 존재가 어쩌면 그 자체로 당신 삶에 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삽질과 어둠의 시간에 벌써 지쳤다면 이 두 권의 그림책을 통해 다시 한번 '으쌰'하고 힘을 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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