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사적인 유투브 탐방>
지금도 그럴까, 한때는 저녁 상을 놓고 둘러 앉아 주말 연속극을 보고, 이어서 <개그 콘서트>를 보면 주말 저녁이 마무리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끌벅적한 엔딩 뮤직이 아쉬운 주말을 위로하던 <개그 콘서트>는 사라졌다 다른 시간대로 옮겨 갔다. 주말 연속극은 순항 중이라지만 매주 챙겨보던 흥미는 사라졌다. 한때는 50%를 육박하던 시청률이 10% 언저리에 머무는 걸 보면 나같은 사람들이 많아진 듯하다. 대신 주말 연속극처럼 챙겨보게 되는 유투브가 생겼다. 일요일마다 영상을 올리는 <미쓰 단순>이다.
2019년 3월 19일 '언젠간 여기 머물겁니다'가 내가 본 첫 방송이다. 물론 영상의 기록은 5년전이지만 1년 남짓 구독 중이다. 몰아보기 하듯, '미쓰 단순'의 여정을 섭렵했고, 이제는 주말 연속극처럼 안보면 아쉬워 매주 챙겨보는 유투브가 됐다.
그녀는 서울에 머물며 중소기업을 다녔다. 그리고 부모님은 산청에 계시고, 그녀가 언젠가 여기서 살 겁니다라고 하는 곳은 부모님이 25년 동안 가꾸시던 주말 농장 이었다. 그런데 2년 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시면서 그곳이 방치되었고, 2019년 부모님과 함께 그곳을 장악한 이름모를 아이들(?)을 정리하며 영상은 시작된다.
영상의 초반은 왕복 8시간 서울과 주말의 산청을 오르내리며 주말 농장의 틀을 갖춰 가던 모습이 주로 담긴다. 딸 부잣집의 둘째 딸, 형제들과 함께 살다 저마다 가정을 이룬 형제들과 달리 여전히 홀로 사는 그녀, 한때는 세계곳곳을 거침없이 배낭 하나를 메고 누비던 그녀는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며 자신의 두 번 째 인생으로 부모님 곁 산청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분주하게 농장을 가꾸다 어스름 저녁 무렵 서울로 향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던 영상은 뜻밖의 전기를 맞이한다. 첫 영상에서 '언젠가'라며 느긋하게 인생 2회차를 준비하던 그녀, 하지만 그녀가 다니던 회사의 운명은 그녀의 인생 2회차를 앞당기게 만든다.
<미쓰 단순>은 드라마처럼 서울과 산청을 오가며 주말 농장을 꾸리던 한 여성이, 운명처럼 닥친 상황으로 인해 산청 골짜기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꾸준히 올리고 있는 건 일주일치 동정을 올리는 '단순 로그'이지만, 한때는 '단순 쎄이'라고 해서 공유하고 싶은 정보와 생각을 짤막하게 올리기도 했다.
제목에서부터 '단순'을 주창한 유투버인 만큼 그녀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서울에서 살던 집의 물건들도 정리하고, 산청에서 새로 짓게 된 집도 미니멀리스트로서 자신의 포부에 맞게 복층형 구조로 단촐하게 지었다. 그런데, 연속극의 묘미란 게 인생이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거 아닐까.
단촐하게 혼자 살기 좋은 그녀의 집, '치근덕'이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홀로 사는 시골 삶에 벗을 만들고자 동네 고양이들에게 갖은 공덕을 바쳤지만, '나만 고양이 없어' 모드는 쉬이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언니네서 구출한 아기 길고양이와, 유기견센타에서 데려온 두 명의 동반자를 맞아들이게 된다.
각각 단디와 순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고양이와 강아지, (심지어 그녀네 로봇 청소기는 똑디로, 그녀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모두 '디'자 돌림 형제가 된다) 심지어 강아지 순디는 불과 몇 개월만에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성장을 보여 집안을 곽 채운다. 호젓하게 자신의 시간을 채워나가던 그녀는 아침 저녁 순디 산책에 온집안을 날리는 털과의 전쟁을 벌이는 '엄마'가 되었다.
어디 동물 가족뿐일까. 처음 집을 지을 때도 단순하게, 집기류도 단촐하게, 가전제품도 심플하게 그러던 그녀의 살림이 점점 번다해져 간다. 텃밭에서 난 작물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냉장고는 교체됐고, 후라이팬도, 냄비도 커져만 간다. 김장도 담그고, 음식도 끼니 때마다 해먹으려니 자고로 요리는 '장비빨'이라고 믹서기 등등 신상이 넘쳐난다.
텃밭도 마찬가지다. 혼자 먹을 만큼만 키운다던 텃밭이라는데 그 수발이 만만치 않다. 사시사철 계절마다 텃밭에 필요한 이러저러한 물건들이 늘다보니 결국 창고도 만들게 되었다. 철마다 피고지는 꽃을 보려니 정신없다 싶을만큼 빼곡하다. 가급적 텃밭에서 나는 푸성귀로 자급자족하려다 보니 철철이 심고, 수확하고,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녀는 여전히 미니멀리스트라는데, 어쩐지 그 말이 맥시멀리스트의 자조섞인 애교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당신 미니멀리스트라고 했잖냐? 따질 일일까, 살림을 살다보면 안다. 몇 년 지나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살림이 늘었나 싶게 집이 꽉 차있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연속극 보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그녀의 유투브를 꾸준히 보게 된 건 '지푸라기 잡는 심정'같은 마음이었다. 해묵은 숙제를 떠안은 것처럼 홀로 살아내야 하는 시절을 떠안은 나는 꽤나 막막했었다. 마치 답지가 없는 시험지를 받아든 아이처럼 이리저리 정답이 없을까, 좋은 참고서가 없을까 헤매던 중 그녀를 만났다.
물론 일주일에 삼십 분 남짓의 시간으로 설명되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도 그 삼십 분 남짓의 시간에 의연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을 좋은 참고서 삼아 나의 시간을 건넜다.
그 중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자신을 소중하게 대접하는 방식이었다. 유투버로서 자신의 구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하지만, 그녀는 매끼는 아니더라도 꼬박꼬박 밥을 해서 먹었다. 유투브에서 인기있다는 각종 요리를 스스로에게 해서 대접했다. 나로 살아가는 첫 걸음은 바로 나의 한 끼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한 끼를 제대로 대접하다보니, 나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쎄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말한다. 사람들은 홀로 텃밭을 가꾸며 나이들어 가는 삶에 대해 우려하기도 하지만, 삶은 어차피 저마다 감수해야 할 면이 있는 거라고, 홀로 사는 삶 역시 다른 삶과 다르지 않다고. 세상은 20대, 30대, 40대 저마다 해야할 과제와 같은 무언가를 정해놓곤 하지만, 자신이 충실히 살아가면 60대도, 70대로 살아갈 이유와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어떤 나이든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잘 채워가도록 애쓰면 한다고. 그래서일까, 그녀는 산청 도서관의 단골에, 농한기면 지리산 둘레길을 종주해낸다. 지리산 둘레길 종주까지는 아니지만 그녀가 추천한 <인간 본성의 법칙>이 올해의 종주 도서가 되었고, 그 덕에 '인간'을 새삼스레 탐구 중이다.